지난 3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생후 19개월 ㄱ양을 만나기 위해 아기상어 뮤지컬 공연팀이 방문했다. ㄱ양 아버지 SNS 갈무리
‘아기 상어~뚜루루 뚜루~♬ 귀여운~뚜루루뚜루~♬’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회의실에서 생후 19개월 ㄱ양은 아기상어 노래에 맞춰 즐겁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노란색 아기상어 모자와 분홍색 상어가족 티셔츠까지 입은 아이는 갑자기 얼어버린 듯 멈춰 섰다. 눈앞에 ‘진짜’ 아기상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참 미동도 없이 아기상어를 바라보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자 다시 노래에 맞춰 몸을 살짝 흔들었다. 병원을 방문한 이들은 아기상어 탈을 쓴 뮤지컬 공연팀이었다.
아이는 생후 7개월에 심장이 제기능을 못하는 확장성 심근병증이란 병을 진단받고 심장 이식을 기다리며 1년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다. 평소 아기상어를 끼고 살며 병실 생활을 하는 아이의 눈앞에 꿈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심장혈관외과 아동전문간호사 이은성(42)씨가 보낸 한 통의 이메일이 ‘깜짝 공연’을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었다. 이씨는 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서 저도 기분이 좋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다 웃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아기상어의 병원 방문은 이씨가 출퇴근 길에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주변에 걸린 아기상어 뮤지컬 공연 펼침막을 보다 ㄱ양을 떠올리며 시작됐다. 공연장은 병원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 심실보조장치를 착용하고 지내는 아이는 병원에서 나갈 수 없다.
“펼침막을 보다 ㄱ양이 생각났어요. 아이가 너무 좋아할 것 같아서 계획적으로 했다기보단 즉흥적으로 메일을 보냈어요. 그런데 업체에서 흔쾌히 오케이 하실 줄을 생각도 못 했죠.”
지난 3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생후 19개월 ㄱ양을 만나기 위해 아기상어 뮤지컬 공연팀이 방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지난 3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생후 19개월 ㄱ양을 만나기 위해 아기상어 뮤지컬 공연팀이 방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이씨는 지난 1일 오전 뮤지컬 제작사인 더핑크퐁컴퍼니에 ‘ㄱ양이 병원 밖을 나갈 수 없는데 아이를 위해 공연 끝나고 잠깐 병원에 들러주실 수 있냐’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그는 “당시에는 아이에게 아기상어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고 했다.
이씨의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메일을 보낸 당일 오후 더핑크퐁컴퍼니에서 병원을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지난 3일 병원을 찾은 아기상어 뮤지컬 공연팀은 병실에서 나와 이동할 수 있는 아이들 4명을 각각 만나 율동을 함께하며 사진을 찍고, 아기상어 굿즈 등을 선물로 줬다. 거동이 어려워 병실에서 이동할 수 없는 아이들 10여명에게는 선물을 전달했다.
지난 3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생후 19개월 ㄱ양을 만나기 위해 아기상어 뮤지컬 공연팀이 방문했다. ㄱ양 아버지 SNS 갈무리
“공연이 끝나고 다음날 출근했는데 선물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들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 두 아이를 둔 어머니인 이씨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처럼 웃음꽃이 핀 부모들과 병원 직원들의 모습에 ‘힐링’이 됐다고 했다. “병원에서 크게 웃을 일이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아이들 웃는 것만 봐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잖아요. 아이들이 좋아한 거에 더해서 부모님들, 병원 직원들도 웃을 수 있어서 힐링이 되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더핑크퐁컴퍼니에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아기상어 병원 공연은 ㄱ양 아버지가 3일 “아기는 생후 7개월 때 심장기능이 1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고, 확장성 심근병증이라는 병을 진단받았다. 심장 이식 대기가 길어지면서 저와 와이프는 너무 힘들고 걱정되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한 일이 있어서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외부에 알려졌다.
그는 “다른 사람들한텐 별일 아니겠지만 인공심장을 달고 있어서 밖에 나갈 수 없는 저희 아기를 위해서 직접 와주셔서 공연과 선물도 주시고…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신촌세브란스 의료진분들, 그리고 공연 끝나자마자 힘든데 와주신 (뮤지컬)배우님, 핑크퐁 컴퍼니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적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이은성 간호사와 ㄱ양 어머니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ㄱ양 아버지가 공개한 아내와 간호사 이씨가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 이씨는 “ㄱ양이 나중에 커서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병원에 있는 기다림이 그냥 힘든 시간만은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서운함도 힘듦도 기쁨의 순간이 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시고 좋은 생각만 하시라”고 아이의 부모를 격려했다.
ㄱ양 아버지는 6일 한겨레에 “마음속에 감사함만 간직하고 표현을 못 했다. 항상 신경 써주시고 저희 가족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이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ㄱ양 아버지가 올린 글에는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댓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아버지는 “응원 댓글 보고 너무 힘이 난다. 응원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