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미국 출장 때 사용한 경비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출장경비 내역 공개가 국익 침해로 이어지지 않으며,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장관의 당시 출장은 7일 중 3일이 ‘미국 공휴일’이어서, 방문국 공휴일이 포함된 출장은 자제하라는 취지의 공무출장 규정을 따르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법무부는 한 장관의 미국 출장에 대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대폭 줄였다” “한 장관이 항공편 일등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을 예약하라고 지시했다”며 ‘예산 절감’을 홍보한 바 있다.
■ 법무부 “예산 절감”이라면서 세부내역 공개 거부
2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는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대표 하승수 변호사가 법무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출장경비의 세부 집행내역이나 지출증빙자료 그 자체로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에 관한 사항으로 보기 어렵다”며 “특히 출장목적·방문기관·일정 등의 사전 정보가 공개돼 있는 상황에서 세부 집행내역을 공개한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발생한다고 볼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더욱이 공공기관이 보유하는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공개하여야 함이 원칙이고, 원고가 정보공개를 요구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국민의 예산감시 기능, 국정운영의 투명성 제고 등과 같은 이익이 (세부 집행내역을) 비공개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추상적인 공익에 비해 결코 작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한 장관은 지난해 6월29일부터 7월7일까지 9일간 한미 사법기관 간 공조와 협력 구축 방안 논의를 위해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7월6일 한국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정을 소화할 수 있던 날은 7월5일까지 모두 7일이었다. 이 가운데 토요일인 7월2일부터 미국의 독립기념일로 공휴일인 7월4일까지 사흘간 휴일이었다. 일정의 절반 가까이가 현지 기관 방문 등이 어려운 연휴 기간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방문국 공휴일을 고려하는 등 방문 시기는 적합한지’ 따지도록 규정된 예규의
‘공무국외출장 심사 및 허가기준(심사기준)’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당시 <한겨레>가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미국 출장 상세일정을 보면, 7월1일과 공휴일인 7월4일에는 오찬 일정이 있긴 했지만 기관 방문은 없었다. 하지만 법무부 관계자는 “‘출장국 현지기관’과 협력관계 구축이라는 핵심사항 위주로만 (결과보고서에) 기재했다”며 “기관을 방문하지 않은 날은 없다”고 밝혔다. 또 당시 법무부 관계자는 공휴일을 포함해 출장 일정을 잡은 이유에 대해 “미국 법무부와의 일정 조율 등을 고려해 당시 출장 일정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 “밥값이 왜 비밀이냐” 정보공개 소송 제기
이에 하 변호사는 한 장관의 미국 출장 관련 출장경비 지출일시 및 금액, 지출 명목과 장소 등 세부집행내역 및 영수증 등 지출증빙서류를 밝히라며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법무부로부터 거부 통지를 받았다. 공무원의 국외출장 정보를 공개하는 ‘국외출장 연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한 장관을 포함한 4명은 7박9일 출장에서 4800여만원을 썼다.
법무부는 “본건 출장경비 집행내역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 2호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후 하 변호사는 “비행기 삯으로 얼마를 썼고, 어디서 얼마의 밥을 먹고, 어느 호텔에서 얼마를 주고 잤는지는 비밀이 아니다”라며 지난해 11월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하 변호사는 뉴스타파·함께하는시민행동·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등과 함께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2017년 1월1일부터 2019년 9월30일까지 사용한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지출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행정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고, 올해 6월 검찰로부터 관련 정보를 넘겨 받았다. 당시 검찰총장은 김수남·문무일·윤석열 총장이었다. 하지만 검찰로부터 넘겨받은 받은 내용은 대법원 판결 취지와 달리 관련 내용이 무더기로 삭제되거나, 공개한 서류들도 복사 상태가 불량해
글자를 해독하기 힘든 수준이어서 논란이 인 바 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