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흉악범죄에 대한 강력한 법 집행 여론을 틈타, 경찰청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한 경찰관에게도 변호사 선임료를 일부 지원하기로 했다. 현행법으로도 면책 대상이 아닌 ‘고의·중과실’ 사건까지 법률지원이 확대됨에 따라, 과잉 진압 등 공권력 남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경찰청이 최근 일선에 전달한 ‘소송지원 사각지대 해소 계획’을 보면, 경찰청은 개별 경찰관에 대한 변호사 선임료 지원 등 법률지원 대상을 유죄판결을 받은 고의범과 징역형이 확정된 중과실범까지 확대했다. 경찰청은 현행 경찰법률보험과 공무원 책임보험 제도에 따라 그동안 개별 경찰관이 소송에 휘말렸을 때 변호사비를 지원하다가 고의 및 중과실 결론이 나온 경우 지원금을 회수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경찰청 소송지원단은 법률지원을 할 때 ‘행위 목적’, ‘사적 이해관계 여부’, ‘결과의 중대성’과 함께 ‘비난 가능성’까지 고려해 지원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비난 가능성’은 언론 등 외부 여론을 가리킨 것으로,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해도 여론이 우호적이면 변호사비 지원을 해준다는 의미다.
경찰청은 연말까지 시범 운영을 실시하고, 내년부터는 소송지원 재원인 복지기금 사용계획에 반영해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변호사 선임료는 최대 1500만원까지 지원한다. 직무 관련 형사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기존엔 선임료를 모두 환급했지만, 앞으로는 소송지원단 결정에 따라 50% 안팎의 실비로 지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지난 12일 현행범을 체포하다 피의자의 목 부위에 압박을 가해 의식불명에 처하게 해 독직폭행 혐의로 입건된 일선 경장도 재판에서 고의나 중과실이 인정되더라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고의나 중과실이 인정돼 법적 책임을 인정받은 경우까지 경찰이 나서 법적 부담을 경감하는 건 과도한 데다 법 체계 및 상위법 위반 소지까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은 면책 대상이 아니다.
경찰청도 이를 고려한듯 면책 조건 중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때’라는 대목을 삭제하고, 면책 범죄를 한정짓지 않는 내용의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만희 의원실에 전달했다. 이 의원은 경찰의 주장 등을 반영한 개정안을 이번주 중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경찰청 인권위원을 지낸 김원규 변호사는 “법원에서 고의·중과실이 인정된 부분까지 경찰에서 보호한다면 ‘위법한 행위를 마음먹고 해도 책임 면하게 해주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며 “공무원이 고의나 중과실에 이를 만큼 잘못을 했으면 개인 책임을 지는 게 현행 법체계에 맞다. 내부 예산이더라도 조직이 이를 대신 책임질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선 경찰서 직원도 “중과실도 아닌 고의까지 우리 스스로 면책하자고 말하는 건 국민들이 보기에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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