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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페트병은 ‘위험한 물건’이 아니기에 이를 이용해 사람을 다치게 하더라도 특수상해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심은 페트병에 물이 가득 차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2심은 페트병에 물이 없어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고 각각 판단했다. 결국 페트병에 물이 채워졌는지에 따라 특수상해죄 성립 여부가 갈린 셈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ㄱ씨(47)에게 특수상해죄를 적용하지 않고 상해죄를 인정한 원심을 상고 기각으로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대법원은 “공소사실 중 특수상해 부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원심이 특수상해죄에서의 ‘위험한 물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ㄱ씨는 2021년 8월 집에서 2ℓ 용량 페트병으로 피해자의 눈 부위를 여러 차례 내리쳐 전치 2주의 상해를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ㄱ씨 쪽은 “페트병으로 피해자의 눈 부위를 내리친 사실이 없고,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페트병은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형법상 특수상해죄는 ‘위험한 물건’으로 사람을 다치게 할 때 성립하는데, 일반 상해죄보다 법정형이 높다.
재판의 쟁점은 ㄱ씨가 피해자를 때릴 때 썼던 페트병이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지였다. 1심은 ㄱ씨가 2ℓ 용량의 생수가 가득 찬 페트병으로 피해자를 때렸다고 보고, 특수상해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페트병이 위험한 물건이라고 판단한 이유로 “페트병에 물이 들어있었다면, 그 무게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페트병의 단단한 뚜껑 부분으로 여러 차례 내리치는 것은 사회 통념상 신체의 위험을 느낄 수 있는 정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심은 ㄱ씨에게 특수상해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고 대신 상해죄를 적용했다. 2심은 ㄱ씨가 피해자에게 생수병의 물을 뿌리거나 부었다는 피해자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페트병에 생수가 들어있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물이 가득 차 있지 않은 빈 페트병 자체는 위험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ㄱ씨는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스토킹처벌법 위반)로도 함께 기소됐는데, 이 혐의는 줄곧 유죄로 인정됐다. ㄱ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특수상해죄가 인정되지 않았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이 고려돼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이 확정됐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