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온천역에는 온천이 없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신길온천역에 붙은 안내문이다. “온천욕을 즐기러 갔던 사람들이 헛걸음하고 돌아왔다”는 우스개가 있는 이 역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려는 정부의 시도에 불복해 제기된 소송이 각하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신명희)는 신길온천역 부근에 거주하는 온천공 발견자 고 정장출 박사의 상속인 정아무개씨와 역 이름이 들어간 아파트에 사는 주민 등 11명이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역명개정처분 취소 소송을 최근 각하했다.
2020년 3월 안산시는 “신길온천 발견신고 수리가 취소됨에 따라 4호선 신길온천역의 이름을 개정한다”고 발표한 뒤 국가철도공단에 ‘능길역’으로 개정 요청했고, 2021년 국가철도공단은 국토교통부와 함께 역이름 변경을 고시했다. 정씨 등은 “역이름이 바뀌면서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역이름 변경을 취소해 줄 것을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청구했으나 각하되자 법원에 재차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도 “역이름 변경이 정씨 등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볼 수 없다”며 “역이름 변경으로 개별적·직접적·구체적 법률상 이익이 침해됐다고 할 수도 없어 원고들에게 다툴 수 있는 자격도 없다”고 각하이유를 설명했다. 각하란 소송 조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사건을 심리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역이름 변경은 공공시설을 체계적으로 관리·이용하기 위한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지역주민이나 관계인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들의 개별적·직접적·구체적 법률상 이익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고, 불이익은 간접적·사실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지질학자였던 고 정장출 박사가 1985년 온천을 발견하고 2년 뒤 안산시에 온천발견 신고를 냈으나 반월·시화 단지와 인접한
해당 토지에 주택단지를 짓고 싶었던 안산시가 온천발견 신고 접수를 거부해 법정 공방을 벌였다. 1992년 대법원에서 정 박사가 승소하면서 온천발견 신고가 이뤄졌지만
안산시는 1993년 정 박사가 낸 ‘온천지구 지정’ 요구에 대해 ‘불가’ 통보하면서 온천 개발은 진행되지 못했다.
2000년 7월께 4호선 지하철이 안산역에서 오이도역까지 연장될 때 국가철도공단은 온천개발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신길온천역’으로 역이름을 정했지만 2005년 정 박사가 세상을 떠났고, 안산시의 계획에 따라 역 주변에는 아파트와 주거단지들이 세워지고 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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