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과거에 소유했던 인왕제색도에 대해 소유권 소송이 제기됐으나 1심에서 각하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재판장 김상우)는 7일 서예가 손재형의 큰손주 손원경씨가 이재용 회장 일가에 낸 인왕제색도 소유권 확인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본안에 대한 판단 없이 사건을 끝내는 결정이다.
앞서 손씨는 이 회장 일가를 상대로 인왕제색도에 대해 8분의1의 소유권이 있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확인의 소)’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손씨에게 인왕제색도의 소유권이 있는지 등을 판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존에 손씨가 낸 ‘확인의 소’ 대신에 소유권 등을 옮기는 ‘이행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손씨가 낸 (확인의 소가)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이나 위험을 제거하는 가장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이거나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의 종국적인 해결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소유권 등에 대한 확인의 소는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일 때에만 허용된다.
앞서 삼성가 쪽은 “인왕제색도는 현재 대한민국이 소유하고 있다”며 “손씨가 이 사건에서 승소해 인왕제색도가 손씨의 소유임을 확인한다는 판결을 받더라도 위 판결의 효력은 이 사건 소의 당사자가 아닌 대한민국에게는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재판부는 “(손씨는) 대한민국 또는 피고들(삼성 일가)을 상대로 이 사건 미술품의 인도를 청구하는 이행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며 국가에 기증된 인왕제색도 소유물 인도청구가 대한민국이나 삼성 일가 가운데 누구를 상대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는 않았다.
이재용 회장 등 유족들은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난 이후 인왕제색도 등 미술품 2만3000여점을 2021년 국가에 기증했다. 손씨는 지난해 4월 이재용 회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소유권 확인 소송을 냈다. 손씨는 할아버지 손재형씨가 소유한 인왕제색도가 1970년대 삼성가에 부당하게 넘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씨는 할아버지가 인왕제색도를 이병철 삼성 회장에게 맡기고 돈을 빌렸으나, 1975년 할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진 뒤 숙부들이 삼성에 인왕제색도 보관증을 넘기거나 파기했다고 주장한다. 삼성 쪽은 손씨의 주장이 근거 없다는 입장이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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