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연 ‘SKT의 개인정보 가명처리 정지를 요구하는 소송 항소심 선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정보주체 선택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스케이텔레콤(SKT) 가입자들이 통신사를 상대로 ‘개인정보 가명처리’를 중단하라며 소송을 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승소했다. 이른바 ‘데이터 3법’으로 불리는 2020년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을 근거로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한 ‘가명 정보’가 폭넓게 활용되는 흐름에 제동을 걸고, 정보주체의 권리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고법 민사 7부(재판장 강승준)는 20일 정아무개씨 등 5명이 SKT를 상대로 제기한 처리정지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개인정보보호법 28조 2항과 관련해 가명 정보 처리가 같은 법 37조 2항에서 말하는 처리정지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볼 수 없다”며 “(당사자가 요구할 때에는) 개인정보 가명처리를 정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가명처리’란 개인정보 일부를 삭제·대체해 추가정보 없이는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비식별화하는 조치다. 2020년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이동통신사 등 개인정보처리자들은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의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가명처리 한 뒤 폭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2020년 10월 SKT가 보유한 개인정보의 가명처리 여부, 가명처리된 정보의 주체가 처리내역 등을 열람할 수 있는지를 물으며 가명처리 중단을 요구했다. 통신사가 가명처리를 내세워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SKT는 “이미 가명처리된 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개인정보 열람과 처리정지권이 제한된다”며 시민단체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단체들이 2021년 2월 원고들과 함께 개인정보의 열람청구권, 가명처리정지권 등 행사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1·2심 재판부는 모두 SKT와 같은 개인정보 처리자는 정보주체가 가명처리 정지를 요구할 경우 이를 들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소송을 주도한 참여연대·진보네트워크센터·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정보·인권 단체들은 판결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원고들을 대리한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소속 최호웅 변호사는 “정보주체가 자신의 정보가 가명처리돼 활용되는 것에 통제권을 행사하고, 개인정보보호법에서 보장하는 ‘처리정지 요구권’을 명확히 인정했다는 점에서 판결의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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