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동현약국에 이곳을 운영하던 김동겸씨 부부를 기억하는 메모지들이 붙어 있다. 정봉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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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그동안 귀여어(귀여워) 해주셔서 고마워요”, “어린 시절부터 아플 때마다 다녀간 약국 손님입니다. 항상 친절하게 약 설명을 해주시고,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셨던 게 기억에 선합니다. 부고 소식을 듣고 늦게나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21일 오후 한겨레가 찾아간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동현약국 외관엔 메모지가 가득 붙여진 채 문이 닫혀있었다. 1985년 문을 연 이곳은 최근 약사인 김동겸씨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영업을 종료하게 됐다. 주민들은 39년째 ‘동네 건강지킴이’로서 이곳을 지킨 김씨 부부를 위해 각자의 기억을 담은 메모지를 남겼다.
메모지에 쓰인 글씨는 삐뚤빼뚤한 어린아이의 글씨체부터 정자로 바르게 쓰인 어르신들의 글씨체까지 다양했지만, 김씨 부부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마음은 같았다. 자신을 ‘윤슬’이라고 밝힌 한 어린이는 메모지에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 윤슬이에요. 그리고 항상 친절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잘 지내세요”라고 적었다. 다른 메모지에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편히 들를 수 있어 자주 왔었습니다. 지난 10월부터 문이 닫혀있어 걱정됐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21일 오후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동현약국에 이곳을 운영하던 김동겸씨 부부를 기억하는 메모지들이 붙어 있다. 정봉비 기자
인근 주민과 상인들도 김씨 부부를 친절하고, 따뜻한 이들로 기억하고 있었다. 10년째 동현약국을 이용했다는 주민 김상아(55)씨는 “항상 아이들을 잘 챙겨주고 이뻐해 주셨다. 약을 처방받을 땐 항상 친절하게 설명을 잘해주셨다”며 “비싼 약을 권유하는 대형 약국과는 달리 (김씨는) 필요한 것만 처방해줘 신뢰가 가는 분이었다”라고 했다. 인근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는 공영은(40)씨는 “아침·저녁·주말을 가리지 않고 문을 열어 인근 주민들이 덕분에 참 편했었다”라며 “일흔이 넘으셨던 것으로 아는데, 너무 일만 하다 돌아가신 건 아닌지 싶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이런 사연은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 작가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연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온라인에서도 화제가 됐다. 한달 넘게 약국이 문을 열지 않아 걱정됐던 상황에서 끝내 약국 앞에 부고장이 붙자, 주민들이 하나둘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김씨의 딸이라고 밝힌 ㄱ씨는 게시글에 댓글로 감사 인사를 남겼다. ㄱ씨는 “아버지는 폐동맥 혈전으로 수술을 받고, 대량 출혈로 인한 합병증으로 결국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다. 칠순 생일을 3일 남겨둔 날이었다”며 “동현약국을 찾아와주시고 기억해주시는 많은 분께 정말 감사하다. 저도 꼭 부모님처럼 남들에게 많이 베풀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적었다.
신민경 강동구약사회 회장은 한겨레에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거의 매일 약국 문을 열고 봉사하신 분”이라며 “김동겸 약사님이 올해 공로패 대상자셔서 내년 1월6일 총회 때 가족분들에게 참석을 요청해 수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