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8일 밤 서울 강남구 인근 도로가 물에 잠겨 차량과 보행자가 불편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수도권과 서울 강남역 일대 폭우 때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 숨진 남매의 유가족이 서초구로부터 16억여원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재판부는 10여년 전에도 비슷한 곳에서 맨홀 뚜껑이 열리는 사고가 있었는데도 구청이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않았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허준서)는 숨진 남매의 유가족이 서초구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지난해 8월8일 저녁 당시 49살인 누나 ㄱ씨와 46살인 남동생 ㄴ씨는 서울 강남역과 양재역 사이에 쏟아진 폭우로 차의 시동이 꺼지자 차를 두고 도로를 건너다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 사망했다. 당시 이곳의 누적 강우량은 1200㎜를 넘은 상태였다.
고인이 된 남매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올해 2월, 폭우가 내렸더라도 서초구가 맨홀 뚜껑이 열리지 않게 관리했거나 추락방지시설을 설치해야 했다며 27억6천여만원의 배상금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서초구는 2017년 3월 사고지역 도로의 맨홀 뚜껑을 잠금 기능이 있는 것으로 교체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국가배상법은 지방자치단체의 과실을 따지지 않고 책임을 묻는 구조라며 “언제나 닫혀 있어야 할 맨홀이 열려 있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으므로 그 자체로 맨홀 설치·관리상의 하자”라며 서초구의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10여년 전인 2011년 7월 홍수 때도 강남역 일대에서 하수도 빗물이 맨홀 뚜껑 밖으로 역류한 경험이 있다”며 “강남역 일대 도로에 설치된 맨홀은 폭우가 쏟아질 경우 하수도 내부에서 빗물이 역류해 뚜껑이 열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므로 쉽게 열리지 않는 정도로 설치·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맨홀 주변 접근 자체를 통제하는 방법 등으로도 추락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당시 예상을 넘어서는 폭우가 쏟아졌던 점, 서초구가 즉시 현장에 출동해 조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 남매가 차량에서 대피하던 당시 폭우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서초구의 책임을 80%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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