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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물은 맑아졌으나 ‘사람’이 그립네요

등록 2006-04-14 20:55수정 2006-04-14 20:59

희로애락 함께하며 ‘사람다운 삶’ 배워
30여년 사진 모아 기증…23일까지 전시
일본인 노무라가 본 청계천

“청계천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이었어요.”

지난해 10월 말쑥하게 단장한 청계천 풍경이 그는 낯설다고 했다.

노무라 모토유키(75) 목사. 그는 한국전쟁 무렵 도쿄수의대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 신학대학 유학을 거쳐 그는 1968년 선교사로 한국에 처음 발을 디뎠다. 부산·제주·인천 등을 거쳐 서울 청계천변 판자촌에 자리잡았으나 당시엔 일본인의 체류허가 기간이 2주였다. 그럼에도 그는 5년 가량 불편을 마다지 않고 서울을 60여차례나 드나들었다. 지금의 성동구 마장동·사근동 일대에서 빈민구제와 목회 활동을 펼치는 동안 그는 “하루도 충격과 슬픔에 빠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당시 천변엔 한 평도 채 안 되는 판잣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청계천 물로 밥을 지어 먹으면 바로 배탈이 날 정도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 물과 더불어 살았다.

그는 청계천을 바라보며 “이제 물은 맑아졌으나, 돌을 플라스틱으로 바꾼 셈”이라고 꼬집었다. 청계천이 고도성장의 그늘과 획일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달라진 청계천엔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돈이 없어 대학병원에서 응급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쫓겨나 판잣집에서 끝내 숨지고 만 여자아이, 추운 겨울밤 연탄불 하나로 밥을 하고 생선을 구워 자신을 정성껏 대접했던 아주머니를 그는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들과 땀과 눈물, 기쁨을 함께하며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이 무엇인가를 배웠다고 했다.

13일 오후 천변을 걸으며 노무라는 “아직도 한국의 청계천은 내 인생 최고의 배움터”라고 되뇌었다. 그는 “김포공항에서 내려 한국땅을 밟는 순간 <우리의 소원> 가사를 떠올리며 한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을 지극히 사랑했기에, 그는 30년 넘게 모아온 청계천 사진·스크랩 자료 826점을 지난 2월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할 수 있었다. 이달 13일부터 23일까지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문화관에서 열고 있는 ‘노무라 할아버지의 청계천 이야기’ 전시회에 가면 그가 기증한 청계천 사진·자료 등을 볼 수 있다. (02)2286-3410.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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