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의 꿈을 키우던 차아무개(41)씨는 언제 발령이 나는지 알아보려고 교육청에 전화를 했다가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신원조회에 걸려 교사 임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차씨의 남편이 국가보안법을 어겨 12년형을 살고 있다는 것이 결격사유였다. 차씨는 힘겨운 법정투쟁 끝에 승소해 98년부터 교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발령이 나기까지 이중의 고통을 당해야 했다.
정부의 이런 마구잡이 신원조사 관행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7일 국가정보원 등이 벌이고 있는 ‘신원조사’가 법률적 근거 없이 이뤄지고 있어 국민의 기본권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날 국회의장·국가정보원장에게 신원조사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되, △국가 안전보장 등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으로 조사 대상을 한정하고 △조사항목 또한 일반적 예측 및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조정하며 △배후 사상관계 등 연좌제 금지에 위반되는 항목은 삭제하도록 권고했다. 또 국회의장·행정자치부 장관에게는 신원조사 대상자의 열람권 및 정정 청구권 등이 보장되도록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현행 ‘보안업무 규정’과 ‘보안업무 규정 시행규칙’은 신원조사 대상에 대해 △국외여행을 하려고 하는 자 △판사 △각급 대학 총·학장 및 교수와 부교수 △국영 및 정부관리 기업체의 중역급 이상 임원 △기타 각급기관의 장이 요청하는 자 및 국가정보원장이 필요로 하는 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조사항목은 ‘국가보안을 위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 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하며, △본인 및 배후사상 관계 △접촉 인물 △종교 관계 △가족 관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국외여행자, 사립대학 교원 등은 조사대상이라고 보기 어렵고, 판사의 경우 헌법이 정한 독립성 및 자율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각급 기관장의 요청과 국가정보원장이 필요로 하는 자에 대해 신원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신원조사 대상자를 무한정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백지 재위임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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