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초에 유부녀와 ‘불륜’
인생망친 19년 옥살이 불씨
인생망친 19년 옥살이 불씨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습격한 지아무개(50)씨의 삶은 사회에서 소외받은 계층의 전형적인 실패 사례로 꼽을 만하다. 어떤 점에서는 한 편의 ‘범죄인 인생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지씨가 어떻게 사회에서 비껴 나갔으며,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데까지 이르렀는지를 그의 친구들과 지인들의 증언으로 정리했다.
불우했던 출생=지씨는 1956년 태어났으나 버려졌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포대기에 싸인 채 인천시 학익동 ‘지씨 집’ 문 앞에 버려졌다고 전했다. 그를 거둬 키운 아버지는 한 물류회사에서 짐운반을 했고, 어머니는 성매매 지역 골목에서 국수와 막걸리 등을 파는 작은 음식점을 운영했다. 다른 자녀가 없던 그의 양부모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그를 애지중지 키웠다. 친구 ㅎ아무개씨는 “어릴 때 지씨는 여자 아이들에게도 맞고 다닐 정도로 순진한 아이였다”고 기억했다.
상대 여성에게 강간 고발당해
평범한 사춘기=지씨는 중고등학교 시절은 평범한 편이었으나, 조금씩 반항적인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정도가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친구 정아무개씨는 “그냥 공부를 하지 않아서 부모와 마찰을 빚은 정도”라고 전했다.
지씨는 고등학교 때 자신이 친부모로부터 버려진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청소년기는 더욱 우울해졌다. 친구들은 그가 돈 씀씀이가 헤퍼 용돈을 받으면 그날로 다 써버리곤 했다고 기억한다.
갓난아기때 버려져 양부모 손에
일탈의 시작=지씨는 공고를 졸업하고 전문대를 1년쯤 다닌 뒤 그만두고 서울 명동 양화점의 판매원으로 취직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첫 직장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뒤에 여러 직장과 공사장 등을 전전했다.
지씨는 30대 들어 유부녀를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그의 삶이 꼬이게 된 본격적인 계기였다. 지씨는 이 여성을 사랑했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 여성과 남편은 그를 ‘강도·강간’ 혐의로 고발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86년 처음 구속됐다.
기나긴 수감생활=지씨는 4년의 형기를 채우고 나온 뒤, 다시 그 여성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그 여성과 남편은 다시 지씨를 고발했다. 결국 지씨는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구속돼 징역 7년과 보호감호를 선고받았다. 두 번째 수감생활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특히 죗값을 치른 뒤에도 갇혀 있어야 하는 ‘보호감호 제도’에 대한 반감은 그를 매우 광포하게 만들었다. 보호감호 반감에 잦은 폭력 91년부터 98년까지 복역을 마친 뒤 그는 청송보호감호소로 이감됐다. 갇힌 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한 지씨는 감호소 안에서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5차례에 걸쳐 재소자와 교도관, 공중보건의를 폭행했다. 기물을 파손한 사건은 아직도 재판 중이다. 그를 기억하는 의성지법 관계자는 “설득과 통제가 불가능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지씨는 지난해 8월 가출소해 기나긴 수감생활을 마쳤다. 50년 인생에서 무려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셈이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여성 야당 대표의 얼굴을 칼로 그어 일그러진 인생에 또다시 구김살을 보태고 말았다. 김영환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기나긴 수감생활=지씨는 4년의 형기를 채우고 나온 뒤, 다시 그 여성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그 여성과 남편은 다시 지씨를 고발했다. 결국 지씨는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구속돼 징역 7년과 보호감호를 선고받았다. 두 번째 수감생활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특히 죗값을 치른 뒤에도 갇혀 있어야 하는 ‘보호감호 제도’에 대한 반감은 그를 매우 광포하게 만들었다. 보호감호 반감에 잦은 폭력 91년부터 98년까지 복역을 마친 뒤 그는 청송보호감호소로 이감됐다. 갇힌 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한 지씨는 감호소 안에서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5차례에 걸쳐 재소자와 교도관, 공중보건의를 폭행했다. 기물을 파손한 사건은 아직도 재판 중이다. 그를 기억하는 의성지법 관계자는 “설득과 통제가 불가능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지씨는 지난해 8월 가출소해 기나긴 수감생활을 마쳤다. 50년 인생에서 무려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셈이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여성 야당 대표의 얼굴을 칼로 그어 일그러진 인생에 또다시 구김살을 보태고 말았다. 김영환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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