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한-미 자유무역협상 저지 2차 범국민 총궐기대회’가 열린 서울역에서 만난 최중원(47·춘천시 남산면 광판리)씨는 “경찰 감시가 너무 삼엄해 춘천 일대에선 고작 5명 밖에 서울에 못 왔다”며 말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ugud555@hani.co.kr
춘천 농민 최중원씨 상경기
평소처럼 그는 아침 6시30분에 눈을 떴다. 그러나 마음이 급했다. 소여물을 준 뒤 트럭을 타고 30여분을 달려 강촌역으로 향했다. 8시에 떠나는 서울행 기차를 타야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2차 범국민 총궐기대회’가 열린 29일 농민 최중원(47·강원 춘천시 남산면 광판리)씨는 20여일째 낫지 않는 감기 때문에 내내 쿨룩거리면서도 온종일 추위 속에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는 “경찰 감시가 너무 심해 춘천 일대에선 고작 5명밖에 서울에 못 왔다”며 “몸이 좋지 않고 날씨도 춥지만 그래도 올 수 있는 상황이면 최대한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렵게 도착한 서울역 광장에서 오후 2시30분께부터 역사 안 연좌농성이 열렸다. 최씨는 200여명의 농민들 사이에 앉았다. 역사 밖에선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최씨는 “지난 22일 1차 총궐기대회 이후 농민회 간부들의 집 앞에 며칠째 경찰이 버티고 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70여가구가 사는 고향 마을에서 최씨는 ‘젊은이’ 축에 든다. 주민 80%가 농사를 짓고 있는데,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노인들이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자세한 걸 모르지만,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지는데 정부가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아 불만이 높습니다.”
그는 특히 한우 농가들을 중심으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기 전이지만 이미 미국 쇠고기 수입이 재개돼 한우 농가들은 쇠고기 값이 언제 떨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비료값 보조금도 끊겼고요.”
최씨도 암울한 상황이다. 12년 전 귀농한 그는 현재 1만6천평 논농사를 짓고 있다. 도시에서 운수회사 영업사원이나 자영업 등 여러 일에 손을 댔던 그가 고향의 흙으로 돌아간 이유는 “농사는 정직하게 하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올해 쌀 450가마니를 생산했지만 정부의 공공비축제에 한 가마니도 배정을 못 받아, 가마니당 2만원씩 더 깎은 가격에 도매시장에 내다팔아야 한다. 뼈빠지게 일했지만 지난해에도 4500만원 매출액 중 농기계 이자·원금 상환액 2천만원, 인건비 등을 제하고 나니 손에 쥔 게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의 월급이 없다면 전혀 생활이 안 되죠.” 그는 “외국에 처자식을 보낸 사람만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 교육 때문에 도시에 있는 아내·아이들과 떨어져 시골에 사는 나 또한 ‘기러기 아빠’”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최씨는 오후 4시께 연좌농성을 마치고 집회가 열리는 을지로1가로 향했다. 시위대와 함께 도로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가도 농사일에 지친 허리가 아파 간간이 일어서야 했다. 저녁 7시 촛불집회가 열린 명동성당 앞에서 그는 탄식했다. “서울 사람들은 시위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불만이 높다지요. 하지만 도시 사람들도 우리 목소리를 좀 들어줘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너무나 힘든데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정말 농민들은 죽으란 얘기밖에 안 됩니다.”
추운 거리를 헤매다 기침이 더 심해진 그는 밤 10시20분 청량리역에서 강촌행 마지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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