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출판된 재봉교과서 <양재봉강의>에 나오는 다양한 여성 속옷과 이를 입은 모델 그림.
일본인 하세가와 석사논문
“개량 옷 강제하면서 서양 속옷 도입 빨라져”
“개량 옷 강제하면서 서양 속옷 도입 빨라져”
일제 강점기 한국 여성의 속옷 변천이 일본의 제국주의 책략과 무관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본인 하세가와 리사(27·여)는 20일 발표한 성균관대 의상학 석사학위 논문 ‘근대 전기 한·일 여성 속옷의 변천에 관한 연구’에서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수행하면서 전통옷 대신 개량 겉옷을 강제했다”며 “그 결과 여성의 팬티나 속옷조차 제국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일제가 활동하기에 편한 양장을 여성들에게 강제하면서 치마 안에 단속곳과 속바지, 속속곳 등을 겹쳐 입던 속옷 문화도 없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세가와는 속옷 변천의 또다른 원인으로 △서양과 일본의 문화 전파에 따른 서양 복식의 수용 △신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의 양장화 바람 △여성의 사회 진출 확산 등도 꼽았다. 일부 계층에서는 주체적으로 복식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세가와는 “한국과 일본 모두 여성들의 속옷까지 일본 제국주의에서 자유롭지 않은 걸 확인하게 돼 씁쓸하다”면서도 “일본에 견줘 당시 한국의 ‘신여성’들은 자발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인 측면도 강해 ‘한국 여성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양 속옷이 어떤 배경에서 도입됐든 그에 대한 적응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빨랐다는 게 하세가와의 지적이다. 그는 그 이유로 일본이 전통적으로 치마형 속옷을 입은 반면 한국은 바지형 속옷을 입었던 점을 들었다. 브래지어도 한국의 전통 속옷에는 일본과 달리 가슴을 가리기 위한 띠(치맛말기)가 있었기 때문에 좀더 쉽게 수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봉 교과서에 브래지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한국(1937년)이 일본(1943년)보다 6년이나 빨랐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1925년 출판된 재봉교과서 <양재봉강의>에 나오는 다양한 여성 속옷과 이를 입은 모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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