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 안병욱 신임 위원장
[한겨레가 만난 사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 안병욱 신임 위원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 안병욱 신임 위원장
“예. 위원장님 휴대전화입니다.”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건 휴대전화에서 기대했던 ‘예. 안병욱입니다’라는 말 대신 다소 사무적인 말투의 비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범한 교수에서 장관급 공직자로 그의 ‘신분’이 변화했음을 실감하는 순간 이어지는 목소리. “위원장님께서 지금 업무보고를 받는 중이십니다. 무슨 일 때문이신지요?”
어렵사리 통화가 됐고, 지난 7일 오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실에서 안병욱(59) 신임 위원장을 만났다. 바싹 마른 체질에 유난히 볼에 살이 없어 언뜻 보기엔 날카로운 인상의 그가 소탈한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업무 파악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송 신부님이 위원회 틀을 잘 잡아놓으셔서 당분간 그 틀대로 가면 될 텐데, 그 약효가 다한 뒤에는 어떻게 할지….” 지난 3일 송기인 신부에 이어 제2대 진실화해위원장에 취임한 그의 얼굴에서 엄살인지 진심인지 모를 중압감이 풍겨나왔다.
의문사위·국정원과거사위 거쳐 대선 앞둔 시기 2대 위원장에
국정원과거사위서 결론냈던 KAL기 폭파사건 진실위 조사 “과정에 절대 관여 않을 것”
“다른 과거사 기구들과 토론·민간·학계 정부 두루 만날터” 1948년생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68학번인 그는 3선 개헌 반대와 관련한 학내 시위 끝에 징계를 받아 강제징집됐으며 민청학련 사건으로 몇달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후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술단체협의회 활동을 했고, 2000~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과 2005~2007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 부위원장과 위원장을 지냈다. 여러 과거사 청산 기구에 참여해온 그였기에, 진실화해위와도 첫 인연은 아니다. 비록 ‘들러리’긴 했지만 2년 전 위원회 출범 당시 위원장 후보에도 올랐었고, 이후 비상임위원으로 참여하다가 1년 정도 활동한 뒤 중도 하차한 경험이 있다. 위원장 후보였다가 비상임위원을 하다가 그마저 중간에 그만뒀던 그가 다시 위원장에 임명된 모양이 썩 좋아보이지만은 않는다. “위원장 후보야 이름만 걸쳤던 것이고, 비상임위원이 된 것은 순전히 ‘위원장 안 시켜주니 비상임위원은 안 하더라’는 말이 나올까봐서였어요. 그러다 국정원 과거사위 활동에 집중하고 싶어 1년쯤 지나 사임했고, 사실 이번에도 이 자리를 피하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건데….” 사실 2대 진실화해위원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보이기도 한다. ‘먹고 살기 어렵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 공방 속에서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의미가 축소·폄하됐고, 얼마 남지않은 대통령 선거에서 과거사 청산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보수진영의 승리가 유력해 보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걱정되지요. 나름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현 정부에서도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는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쪽이 집권한다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잖아요. 하지만 만약 야당에서 여당으로 입장이 바뀐다면 과거사 청산이 미래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고, 어느 정부에건 도움이 되는 일임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 또 정권이 바뀌면 위원회 활동을 두고 정치적 복선이 있는 것 아니냐며 제기되던 의구심도 없어질 것 같아요.” 처지에 따라 어떤 사안에 대한 견해도 바뀔 수 있다는 것. 이는 사실 안 위원장에게도 민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주도한 국정원 과거사위에서는 1987년 일어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 김현희씨와 김승일씨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와 별개로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 조사를 진행해왔다. 과연 그가 이끄는 진실화해위는 어떤 조사 결과를 내놓을까? 안 위원장이 왠지 ‘불안한’ 표정으로 배석하고 있던 홍보팀장을 ‘걱정말라’며 내보낸 뒤 말을 이었다.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유족들 불만이 크지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 사건 조사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원은 하되 그 내용이나 방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을 거예요.” 사실 그가 활동한 국정원 과거사위의 결론을 두고 사실상 국정원에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특히 김현희·김승일씨의 동유럽과 중동 출입국 기록 등은 위원들이 직접 가서 확인한 것이 아니라, 현지 요원들이 조사하고 보내온 것 아닌가? 모든 현장을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는 그 방대한 여러가지 사항들을 완벽하게 조작할 능력이 없었어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 처리한 것을 봐요. 중정이나 안기부는 반정부 인사들 데려다 고문하는 일이나 잘 했지, 그런 수준의 조작은 하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안됐어요.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당시에도 진상은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대선에 이용하려는 욕심만 앞서 서투르게 일을 처리했고. 그게 당시 우리나라 정보기관 수준이지요. 물론, 여기까지는 내 개인 의견이고 위원회 조사 과정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을 테니 두고 봐요.” 자못 진지한 표정이 된 그가 뒤이어 위원회의 산적한 현안들과 그 운영에 대한 구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친일진상규명위원회 등 여러 과거사 기구들과의 협조나 업무 조율을 위해 조만간 토론의 자리를 만들 생각입니다 … 위원회 성격상 진실규명 신청인들과 유족들의 협조가 절대적인 만큼,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등 민간 단체들과도 만나야겠고 … 독립운동 부분과 해외동포사 부분은 위원회 업무 가운데 하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제대로 다루기 어렵고, 학계나 보훈처, 외교부 등과도 업무가 겹치는 부분인 만큼 어떻게든 조율이 필요하고….” 결국 1대 위원장인 송 신부가 짜놓은 틀 이후가 막막해 걱정이라는 말은 엄살이었나? 잠시 눈을 돌려 바라본 집무실 한쪽 벽의 통으로 된 유리창 밖으로 완만한 남산 능선이 펼쳐져 있었다. 화분 몇 개가 놓여있는 깔끔한 분위기의 집무실은 며칠 전까지 그가 머물렀을, 3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반지하의 비좁은 교수 연구실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이었다. 고위 공직자가 되더니 전화도 비서가 받아주고 사무실도 넓어지고 너무 편안해진 것 아닐까? 위원회 운영에 관한 구상과 포부를 듣다 말고 던진 까칠한 질문에 웃음소리가 되돌아왔다. “허허. 그런데, 여기는 매일매일 일정이 다 짜여져있어 너무 답답해요. 평생 이렇게 꽉 짜여진 일정에 따라 하루하루를 보내기는 군대 시절 이후 처음인 것 같아요. 이러다가 얼마 못 견디게 되는 건 아닌지, 원….” 글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국정원과거사위서 결론냈던 KAL기 폭파사건 진실위 조사 “과정에 절대 관여 않을 것”
“다른 과거사 기구들과 토론·민간·학계 정부 두루 만날터” 1948년생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68학번인 그는 3선 개헌 반대와 관련한 학내 시위 끝에 징계를 받아 강제징집됐으며 민청학련 사건으로 몇달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후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술단체협의회 활동을 했고, 2000~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과 2005~2007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 부위원장과 위원장을 지냈다. 여러 과거사 청산 기구에 참여해온 그였기에, 진실화해위와도 첫 인연은 아니다. 비록 ‘들러리’긴 했지만 2년 전 위원회 출범 당시 위원장 후보에도 올랐었고, 이후 비상임위원으로 참여하다가 1년 정도 활동한 뒤 중도 하차한 경험이 있다. 위원장 후보였다가 비상임위원을 하다가 그마저 중간에 그만뒀던 그가 다시 위원장에 임명된 모양이 썩 좋아보이지만은 않는다. “위원장 후보야 이름만 걸쳤던 것이고, 비상임위원이 된 것은 순전히 ‘위원장 안 시켜주니 비상임위원은 안 하더라’는 말이 나올까봐서였어요. 그러다 국정원 과거사위 활동에 집중하고 싶어 1년쯤 지나 사임했고, 사실 이번에도 이 자리를 피하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건데….” 사실 2대 진실화해위원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보이기도 한다. ‘먹고 살기 어렵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 공방 속에서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의미가 축소·폄하됐고, 얼마 남지않은 대통령 선거에서 과거사 청산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보수진영의 승리가 유력해 보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걱정되지요. 나름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현 정부에서도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는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쪽이 집권한다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잖아요. 하지만 만약 야당에서 여당으로 입장이 바뀐다면 과거사 청산이 미래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고, 어느 정부에건 도움이 되는 일임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 또 정권이 바뀌면 위원회 활동을 두고 정치적 복선이 있는 것 아니냐며 제기되던 의구심도 없어질 것 같아요.” 처지에 따라 어떤 사안에 대한 견해도 바뀔 수 있다는 것. 이는 사실 안 위원장에게도 민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주도한 국정원 과거사위에서는 1987년 일어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 김현희씨와 김승일씨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와 별개로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 조사를 진행해왔다. 과연 그가 이끄는 진실화해위는 어떤 조사 결과를 내놓을까? 안 위원장이 왠지 ‘불안한’ 표정으로 배석하고 있던 홍보팀장을 ‘걱정말라’며 내보낸 뒤 말을 이었다.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유족들 불만이 크지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 사건 조사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원은 하되 그 내용이나 방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을 거예요.” 사실 그가 활동한 국정원 과거사위의 결론을 두고 사실상 국정원에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특히 김현희·김승일씨의 동유럽과 중동 출입국 기록 등은 위원들이 직접 가서 확인한 것이 아니라, 현지 요원들이 조사하고 보내온 것 아닌가? 모든 현장을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는 그 방대한 여러가지 사항들을 완벽하게 조작할 능력이 없었어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 처리한 것을 봐요. 중정이나 안기부는 반정부 인사들 데려다 고문하는 일이나 잘 했지, 그런 수준의 조작은 하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안됐어요.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당시에도 진상은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대선에 이용하려는 욕심만 앞서 서투르게 일을 처리했고. 그게 당시 우리나라 정보기관 수준이지요. 물론, 여기까지는 내 개인 의견이고 위원회 조사 과정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을 테니 두고 봐요.” 자못 진지한 표정이 된 그가 뒤이어 위원회의 산적한 현안들과 그 운영에 대한 구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친일진상규명위원회 등 여러 과거사 기구들과의 협조나 업무 조율을 위해 조만간 토론의 자리를 만들 생각입니다 … 위원회 성격상 진실규명 신청인들과 유족들의 협조가 절대적인 만큼,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등 민간 단체들과도 만나야겠고 … 독립운동 부분과 해외동포사 부분은 위원회 업무 가운데 하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제대로 다루기 어렵고, 학계나 보훈처, 외교부 등과도 업무가 겹치는 부분인 만큼 어떻게든 조율이 필요하고….” 결국 1대 위원장인 송 신부가 짜놓은 틀 이후가 막막해 걱정이라는 말은 엄살이었나? 잠시 눈을 돌려 바라본 집무실 한쪽 벽의 통으로 된 유리창 밖으로 완만한 남산 능선이 펼쳐져 있었다. 화분 몇 개가 놓여있는 깔끔한 분위기의 집무실은 며칠 전까지 그가 머물렀을, 3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반지하의 비좁은 교수 연구실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이었다. 고위 공직자가 되더니 전화도 비서가 받아주고 사무실도 넓어지고 너무 편안해진 것 아닐까? 위원회 운영에 관한 구상과 포부를 듣다 말고 던진 까칠한 질문에 웃음소리가 되돌아왔다. “허허. 그런데, 여기는 매일매일 일정이 다 짜여져있어 너무 답답해요. 평생 이렇게 꽉 짜여진 일정에 따라 하루하루를 보내기는 군대 시절 이후 처음인 것 같아요. 이러다가 얼마 못 견디게 되는 건 아닌지, 원….” 글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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