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타도” “사랑도 명예도”…“물절약 수도세” “엄마가 시장가면 미친소”
31일 넓게 트인 광화문 거리에서 쏟아져 나온 구호와 노래는 시민들을 1987년 6월로 데려다 놓았다. 절반 이상은 ‘6월 민주항쟁’을 겪어 보지 못한 10대와 20대였다.
“명박 타도! 고시 철회!”
시민들의 구호는 하나로 통일돼 갔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던 87년 6월과 닮아 갔다. 삼청동 어귀에서 만난 조광일(40)씨는 “87년에 구호는 ‘독재 타도’ 단 하나였다”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도 다양한 구호를 넘어 이명박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모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호들은 ‘통통 튀었다’. 경찰이 “불법 집회를 한다”고 경고 방송을 하면, 시민들은 경찰에게 “노래해”라고 주문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해산 권고엔 “퇴근해”라고 외쳤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들은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물 절약, 수도세” 하며 맞섰다. “명박 지옥, 탄핵 천국” “촛불은 내 돈으로 샀다, 배후는 양초공장” 등 손팻말에도 기발한 말들이 넘쳐났다.
자정을 넘어서자 비장감이 돌았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30대·40대 귀에 익숙한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남자 친구와 함께 촛불집회에 처음 나왔다는 조은정(26)씨는 “처음 들어 본다”며 난감해하더니, 이내 후렴구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침이슬>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이 이어졌다. 노래를 함께 부르던 학생 최진우(16)군은 “‘이명박 탄핵 투쟁 연대’ 카페에서 들어 본 노래”라며 “집회에 나와 듣다 보니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10대·20대에게 익숙한 노래도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불렀다. “아빠가 출근할 땐 기름값, 엄마가 시장 가면 미친 소, 우리가 학교 가면 0교시 ….” 10대들이 만든 <뽀뽀뽀 개사곡>도 인기였다.
87년 6월의 기억이 흐릿한 2008년 6월1일 새벽, 청와대를 1㎞쯤 앞둔 광화문 거리에서 시민들은 20년 전 거리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