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트라스부르시의 구도심. 라인강의 지류인 일강과 운하에 둘러싸인 구도심은 건축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관광지다.
[공동화 현상을 넘어 도심 르네상스]
⑥스페인 빌바오·프랑스 스트라스부르
⑥스페인 빌바오·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서유럽 중심 스트라스부르
역사유적을 생활공간 활용 “도심을 역사 속에 갇힌 박물관이 아니라 활력이 넘치는 생활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난여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를 찾았을 때 마르티네 호베르 시 광역도시계획 팀장은 도시재생의 방향을 한마디로 압축했다. 보존에 집착하지 않고 ‘공존’과 ‘조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스트라스부르는 독일과 접경한 인구 37만명의 유서 깊은 도시다. 지리적 이점과 독특한 역사 덕분에 1949년부터 유럽 의회가 둥지를 틀고 있다. 서유럽의 중심이고 라인강의 중류에 위치해 예부터 도로와 운하가 발달했다. 이 때문에 ‘유럽의 교차로’, ‘길의 도시’, ‘물의 도시’라는 별명들이 붙었다. 중세 때는 교황의 영토였다가 1681년 30년전쟁 뒤 프랑스, 1871년 보불전쟁 뒤 독일, 1차 대전 뒤 프랑스의 영토로 번갈아 바뀌면서 두 국가의 건축양식을 도시의 자산으로 갖게 됐다. 도심 80만㎡는 라인강 지류인 일강과 운하에 빙 둘러싸여 경관이 빼어나다. 12~15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높이 158m의 노트르담 대성당, 17~18세기 알자스 전통 민가들이 모여 있는 프티 프랑스 등 볼거리가 즐비하다. 이 도심 일대는 8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도 높다. 이곳은 다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 뒤 피해를 복구하고 주택을 마련하는 재건사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당시에 세워진 건물들은 품질보다 양을 중시해 도심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60~70년대 역사유적을 보존하자는 도시재생 운동이 나타났고, 85년 유적을 복원하는 데 보조금을 지급하는 도시보존 계획으로 구체화됐다.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시는 도심을 역사 유적의 박물관이 아니라 상업·업무·주거 등 정상적인 도시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관광지로서 매력을 증대시키는 것 못지않게 주민의 일상적인 요구에 부합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바탕이 됐다.
도심의 모습을 확연하게 바꾼 계기는 89년 사회당 카트린 트로트만 시장이 단행한 교통체계 개편이었다. 시는 매연·소음·체증으로 질식해가는 도심을 보존하려고 자동차 위주의 교통정책을 전면 수정했다. 자동차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는 대신 노면전차 노선과 자전거 도로를 설치했다. 최첨단 노면전차는 5개 노선을 통해 시내 곳곳을 20분 안에 연결하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새로운 명물이 됐다. 스트라스부르/글·사진 안관옥 기자
역사유적을 생활공간 활용 “도심을 역사 속에 갇힌 박물관이 아니라 활력이 넘치는 생활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난여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를 찾았을 때 마르티네 호베르 시 광역도시계획 팀장은 도시재생의 방향을 한마디로 압축했다. 보존에 집착하지 않고 ‘공존’과 ‘조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스트라스부르는 독일과 접경한 인구 37만명의 유서 깊은 도시다. 지리적 이점과 독특한 역사 덕분에 1949년부터 유럽 의회가 둥지를 틀고 있다. 서유럽의 중심이고 라인강의 중류에 위치해 예부터 도로와 운하가 발달했다. 이 때문에 ‘유럽의 교차로’, ‘길의 도시’, ‘물의 도시’라는 별명들이 붙었다. 중세 때는 교황의 영토였다가 1681년 30년전쟁 뒤 프랑스, 1871년 보불전쟁 뒤 독일, 1차 대전 뒤 프랑스의 영토로 번갈아 바뀌면서 두 국가의 건축양식을 도시의 자산으로 갖게 됐다. 도심 80만㎡는 라인강 지류인 일강과 운하에 빙 둘러싸여 경관이 빼어나다. 12~15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높이 158m의 노트르담 대성당, 17~18세기 알자스 전통 민가들이 모여 있는 프티 프랑스 등 볼거리가 즐비하다. 이 도심 일대는 8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도 높다. 이곳은 다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 뒤 피해를 복구하고 주택을 마련하는 재건사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당시에 세워진 건물들은 품질보다 양을 중시해 도심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60~70년대 역사유적을 보존하자는 도시재생 운동이 나타났고, 85년 유적을 복원하는 데 보조금을 지급하는 도시보존 계획으로 구체화됐다.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시는 도심을 역사 유적의 박물관이 아니라 상업·업무·주거 등 정상적인 도시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관광지로서 매력을 증대시키는 것 못지않게 주민의 일상적인 요구에 부합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바탕이 됐다.
도심의 모습을 확연하게 바꾼 계기는 89년 사회당 카트린 트로트만 시장이 단행한 교통체계 개편이었다. 시는 매연·소음·체증으로 질식해가는 도심을 보존하려고 자동차 위주의 교통정책을 전면 수정했다. 자동차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는 대신 노면전차 노선과 자전거 도로를 설치했다. 최첨단 노면전차는 5개 노선을 통해 시내 곳곳을 20분 안에 연결하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새로운 명물이 됐다. 스트라스부르/글·사진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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