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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80년 5·17 ‘전두환 내란음모’ / 한승헌

등록 2009-03-11 18:35수정 2009-03-11 20:05

1980년 5월 17일 김대중씨를 비롯한 재야인사 일제 검거 사태가 벌어지기 열흘 전인 5월 7일,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이 발표한 ‘민주화 촉진 국민선언서’. 이처럼 참여 인사 전원의 자필 서명이 들어간 성명 문건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었다.
1980년 5월 17일 김대중씨를 비롯한 재야인사 일제 검거 사태가 벌어지기 열흘 전인 5월 7일,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이 발표한 ‘민주화 촉진 국민선언서’. 이처럼 참여 인사 전원의 자필 서명이 들어간 성명 문건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47
1980년 5월 17일 밤 10시 무렵, 나를 찾는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긴 지 몇 분 뒤에 대문의 초인종이 울렸다. 세 사람의 건장한 젊은이가 집 안으로 들이닥치더니 무작정 온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신분도 밝히지 않은 그들은 사전에 역할 분담을 한 듯, 한 사람은 아래층 안방으로 들어오고, 두 사람은 2층 서재로 올라갔다. 두 시간쯤 샅샅이 수색을 하더니 책자·자료·인쇄물·일기·메모철 등 한 짐을 챙겨가지고 나서 나더러 함께 가자고 한다. 머리를 숙인 채 차에 실려 간 곳은 남산의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였다. 전에도 드나들었던 지하실에서 ‘잠 안 재우기’를 기본으로 하는 고행이 시작되었다.

이게 무슨 변인가? 당시 이 나라 정치군부의 반동적 행태를 잠시 살펴본다.

10·26 사태 직후 전두환 소장을 우두머리로 하는 소위 신군부는 유신 철폐와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오로지 집권 야욕에 사로잡혀 온갖 불법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직속상관인 육군참모총장을 총격전 끝에 체포하는 ‘12·12 사태’ 즉 군사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전국의 대학생들이 연일 대규모의 항의시위를 벌였는데, 신군부에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5월 15일을 기하여 모두 학원으로 돌아갔다.

박 대통령 사망 이후 대다수의 국민들은 ‘서울의 봄’을 입에 올리며 민주정부 수립을 고대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정치군부의 수상쩍은 움직임에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는 했지만, 그런 대량 검거 작전은 예상 밖이었다. 더구나 그네들의 일망타진 ‘리스트’에 내 이름이 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시 ‘남산’ 지하실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김상현 의원과 이문영 교수가 내 좌우 옆방에 있었고, 이해동 목사와 서남동·한완상 교수도 같은 층에서 조사를 받았다. 김대중 선생을 비롯한 여러 민주인사들이 다른 층에서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것도 뒤에 알게 되었다.

잡혀간 그날(5월 17일)에도 나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의 모임에 나가 민주화를 향한 진로 모색에 참여했을 뿐이고, 그 열흘 전인 5월 7일에는 역시 같은 ‘국민연합’의 ‘민주화 촉진 국민선언’에 서명한 일이 있었으나, 무엇 하나 문제될 내용이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조사한다는 것일까? 처음 그네들이 내민 ‘패’는 한국앰네스티의 용공성과 횡령 혐의 씌우기였다. 전에 말한 대로 나는 그해 5월 이후 한국앰네스티의 조직과 운영의 책임을 지는 전무이사가 되어 활동해오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남산’ 쪽과도 직간접으로 불화가 겹쳐 갔다. 하지만 법적인 잘못은 전혀 없었기에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조사자는 한국앰네스티가 인혁당 사건이나 남민전 사건의 수감자들에게 영치금을 넣어주고 또 그 가족들에게 생계보조금까지 준 것은 용공행위가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그리고 국내외에서 들어온 지원금·구호금·회비 등의 사용에 대해서도 캐묻는 것이 횡령 혐의를 잡고자 하는 눈치였다. 잠을 재우지 않는 철야 조사로 몹시 힘들었지만, 나는 시종 혐의를 부인했다. 마침 5월 19일로 예정된 정기총회를 앞두고 결산 문서까지 작성해놓고 잡혀온 터여서 수입·지출의 대비에 단돈 천원의 어긋남도 없었던 것이다.

지루한 승강이가 며칠 동안 되풀이되고 난 어느 날, 이번에는 공격의 ‘레퍼토리’가 바뀌었다. 김대중 선생 관련 사항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그들은 이것저것 장황하고 집요하게 물었는데, 요컨대 ‘김대중씨를 중심으로 한 재야인사들이 사회혼란을 조성하려고 하지 않았느냐’며 몇 사람의 동향을 들이대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사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책상 위에 있는 종이 한 장을 들여다보니, 거기엔 형법의 내란죄 조항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내란죄로 몰려고 하는 것임을 직감하고, 참 난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김대중 일당이 시국의 혼란을 틈타 학생을 선동하고 폭력 시위를 벌여 내란을 일으킴으로써 정부를 전복하고 김대중이 집권하도록 음모한 것’으로 시나리오를 짜 맞추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억지 씌우기에 정면 부인으로 대응했다. 다른 방에서도 큰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고함과 비명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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