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1일, 용산참사가 일어난지 50일만에 이 지역에 대한 철거가 재개됐다. 영상캡처. 김도성피디.
욕하고 더럽히고 구멍 뚫고 ‘용역 작전’ 여전
유족들 “우린 쓰레기 아냐”…야4당 공동대응
유족들 “우린 쓰레기 아냐”…야4당 공동대응
[르포] 두 달만에 철거 재개된 ‘용산 4구역’ 현장
[동영상]용산 4구역 철거 재개 현장
[%%TAGSTORY1%%]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계절도 바뀌었다. 하지만 용산의 시계는 멈춰버린 지 오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고 많은 논란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뿐이었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과잉진압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만이 유일한 변화였다. 책임자 처벌은 없었고, 진상조사는 미흡했다. 사람들의 관심도 어딘가로 조금씩 옮겨갔다. 이제 용산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무덤덤하다. 다시 식상하고 지루한 철거민들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 두 달 전 그랬던 것처럼. 이제 눈물과 분노는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유족들 “가슴에 두 번이나 대못질”…남은 세입자들 저항 지난 11일 중장비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어나간 용산 4구역에 대한 철거공사가 재개된 것이다. 도시정비조합은 더 이상 공사를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검은색 잠바 차림의 용역직원들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포크레인과 굴착기 같은 중장비 돌아가는 소리도 웅웅 거렸다. 포크레인 팔이 한번 움직이면 건물 외벽은 종이짝처럼 떨어져나갔다. 사고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앞엔 다시 유족들의 울부짖음이 퍼져나갔다. “여러분, 우리는 결국 쓰레기였습니까” 12일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47)씨는 확성기에 대고 격분하듯 토해내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를 만나고 돌아온 심호섭 빈민대책회의 대표로부터 “서울시 부시장을 만나 공사중단을 부탁했지만 ‘시간은 돈이다’고 한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공사를 바라보는 유족들의 가슴은 착잡하기 이를 데가 없다. “합법적으로 철거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사람이 죽은 곳이잖아요. 아직 진상규명도 제대로 안됐고 망자의 영혼은 제대로 하늘에 닿지도 않았는데…. 정말 그 분들은 양심도 없는 건가요. 어떻게 이렇게 두 번이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 있나요.” 권명숙씨는 “최소한 숨진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기 전까진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예의”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현재 용산참사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장례를 미루고 있다. 하지만 법은 약자들의 편이 아니다. 지주조합은 2007년 5월31일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상태이고 철거공사 재개는 합법적이다. 공사 재개로 유족들의 마음은 다시 한번 망루에 오르고 있었다. 현재 용산 4구역 세입자 80여명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지주조합의 철거에 맞서고 있다. 이들은 용역직원들이 출근하는 아침 7시에 남일당 건물 앞에 모여 규찰을 선다. 철거에 동의하지 않은 집에 용역들의 해꼬지를 막기 위해서다. 덩치 큰 용역직원들이 서성이는 골목을 돌며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고 있다. 용역직원들이 통행을 제한해 몸싸움 등의 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욕하고 더럽히고 구멍 뚫고…‘내몰기 작전’ 여전 남은 세입자들은 왜 계속 싸우고 있을까. 턱없는 보상비 때문이다. 99년부터 치킨집을 운영해 온 탁문옥(55)씨는 “지금까지 총 7천만원의 투자를 했는데 조합으로부터 통보받은 보상 금액은 1821만원이었다. 10년 전에 들인 돈보다 훨씬 적은 보상비로 어딜 가서 장사를 하란 거냐”며 하소연했다. 참사 뒤 언론을 통해 세입자들의 불만이 많이 알려졌지만 탁씨는 “달라진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합 쪽과 작년 7월, 8월에 두 번 대화한 게 전부입니다. 재평가를 요구해도 ‘당신네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통보된 금액 외에는 더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세무서에 신고된 금액만으로 재평가하면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소득신고를 낮춰잡는 자영업자들의 생리를 조합은 ‘협상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었다. 참사가 잊혀질 무렵 철거공사는 재개됐고 용산 4구역은 전쟁터처럼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앙상하게 남은 콘크리트 구조물만이 집터였음을 알릴 뿐이었다. 철거되지 않은 집의 담벼락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로 만들기 위한 용역들의 ‘작전’인 셈이었다. 주민들은 “욕하는 건 기본이고 동네를 더럽혀서 스스로 떠나게 만든다”며 혀를 내두른다. 용산 4구역의 주거 세입자인 안아무개씨(60)는 “내가 다리가 불편하니 우리 집만은 내버려 달라고 용역들에게 말하자 ‘병신년이 뭐하러 나와 있냐’는 소리만 들었다”며 하소연했다. 안씨의 집 주변은 모두 철거돼 부서진 벽돌들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한 켠엔 음식물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안씨는 “용역들이 밤에 몰래 버려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변에 악취를 풍겨 더 이상 집에 살 수 없게 만드는 흔한 전략”이라고 했다.
주민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주민들은 용역 직원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주민들을 협박하고 폭행한다고 했다. 지난 13일 철거를 맡고 있는 ㅎ건설의 한 직원은, 주민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한겨레> 취재진의 카메라를 부숴버렸다. 항의하는 기자에게 “전철련 소속의 카메라인줄 알았다”고 말할 뿐이었다. 전철련에 가입된 주민들은 용역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ㅎ건설은 ‘주민 폭행’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 회사 철거팀 김재림 상무는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일하겠냐”며 “용역들을 배치해두는 것은 공사현장이 위험해서 ”라고 선을 그었다.
치안 불안 속 “우리에겐 적이 둘” 경찰에도 책임 물어
주민들은 “경찰이 치안 유지에 손을 놓고 있어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경찰 쪽에도 책임을 물었다. 격앙된 한 주민은 “우리에겐 적이 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용역한테 주민들이 맞아도 경찰이 쌍방 폭행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희성 용산경찰서 형사과장이 “주민들의 오해”라며 “수사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된다”고 해명했지만, 주민들은 믿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철거, 불안해진 치안으로 상권도 말라가고 있었다. 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건물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순대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인규(54)씨는 요즘 오후 장사는 아예 접는다. “밤이 되면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 되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고가 난 뒤 40일째까지는 하루에 국밥 열그릇 팔기도 힘들었습니다. 지금 여기 상권이 다 죽어가고 있어요.”
주거 세입자인 오아무개(55)씨는 세 식구가 살 집을 마련하지 못해 용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이미 집을 팔아버린 뒤였고, 철거회사에서는 수시로 나가라고 요구해 오씨는 스스로도 “이사가고 싶다”는 주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사 갈 능력이 없었다. 오씨는 하소연했다. “용산 근처는 전세값이 너무 올라 3개월째 집을 못 구하고 있어요. 돈 없는 서민들은 항상 쫓겨다니기만 해야하나요.”
“상식적인 보상만 해준다면”…야4당 공동대응도
용산 4구역은 다시 한번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으로 구성된 ‘야 4당 공동위원회’는 16일 박장규 용산구청장을 찾아 “철거를 중단하고 대화테이블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하루 빨리 진행하려다 더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청장은 “5일 정도 공사를 중단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는 답변 뿐이었다.
공동위원회 쪽은 “그래도 의원들이 찾아갔는데”라며 내심 철거 중단을 기대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철거공사를 주민과 조합간 협상이 끝날 때까지 중단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철거기간이 늘어날 수록 공사비용이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에 조합과 시공사, 시행사 모두 ‘속도전’에 빠져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의외로 문제 해결의 열쇠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김인규씨의 말이다. “용산 개발 참여로 1개 건설사가 얻는 이익만 1조4천억원에 이를 것이라 합니다. 용역회사에 들이는 비용만 수십억이라고 하고요. 이 돈으로 세입자들에게 현실적인 보상만 해준다면 알아서들 나갈텐데 말이죠.”
탁문옥씨는 “장사만 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개발 이익을 돌려 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른 곳에 가서 지금처럼 장사만 할 수 있도록 상식적인 배상만 해달라는 겁니다. 이러다 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순찰을 마친 주민들은 저녁이 되자 다시 남일당 건물 앞에 모였다. 곧 열릴 촛불집회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시들어버린 몇 개의 화환이 남일당 건물 아래 인도에 놓여 있었고, 불에 검게 그을린 버스 한 대가 건물 입구를 막고 있었다. 그 위로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적힌 글귀가 건물 벽에 적혀 있었다. 하나 둘씩 촛불을 든 사람들이 건물 앞으로 모여들었다.
글·허재현 기자catalunia@hani.co.kr / 영상·김도성 피디
▶관련 기사
용산참사 유족 권명숙씨 “남편 꿈에 나타나 아프다고 해요”
[동영상]용산 4구역 철거 재개 현장
[%%TAGSTORY1%%]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계절도 바뀌었다. 하지만 용산의 시계는 멈춰버린 지 오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고 많은 논란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뿐이었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과잉진압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만이 유일한 변화였다. 책임자 처벌은 없었고, 진상조사는 미흡했다. 사람들의 관심도 어딘가로 조금씩 옮겨갔다. 이제 용산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무덤덤하다. 다시 식상하고 지루한 철거민들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 두 달 전 그랬던 것처럼. 이제 눈물과 분노는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유족들 “가슴에 두 번이나 대못질”…남은 세입자들 저항 지난 11일 중장비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어나간 용산 4구역에 대한 철거공사가 재개된 것이다. 도시정비조합은 더 이상 공사를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검은색 잠바 차림의 용역직원들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포크레인과 굴착기 같은 중장비 돌아가는 소리도 웅웅 거렸다. 포크레인 팔이 한번 움직이면 건물 외벽은 종이짝처럼 떨어져나갔다. 사고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앞엔 다시 유족들의 울부짖음이 퍼져나갔다. “여러분, 우리는 결국 쓰레기였습니까” 12일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47)씨는 확성기에 대고 격분하듯 토해내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를 만나고 돌아온 심호섭 빈민대책회의 대표로부터 “서울시 부시장을 만나 공사중단을 부탁했지만 ‘시간은 돈이다’고 한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공사를 바라보는 유족들의 가슴은 착잡하기 이를 데가 없다. “합법적으로 철거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사람이 죽은 곳이잖아요. 아직 진상규명도 제대로 안됐고 망자의 영혼은 제대로 하늘에 닿지도 않았는데…. 정말 그 분들은 양심도 없는 건가요. 어떻게 이렇게 두 번이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 있나요.” 권명숙씨는 “최소한 숨진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기 전까진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예의”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현재 용산참사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장례를 미루고 있다. 하지만 법은 약자들의 편이 아니다. 지주조합은 2007년 5월31일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상태이고 철거공사 재개는 합법적이다. 공사 재개로 유족들의 마음은 다시 한번 망루에 오르고 있었다. 현재 용산 4구역 세입자 80여명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지주조합의 철거에 맞서고 있다. 이들은 용역직원들이 출근하는 아침 7시에 남일당 건물 앞에 모여 규찰을 선다. 철거에 동의하지 않은 집에 용역들의 해꼬지를 막기 위해서다. 덩치 큰 용역직원들이 서성이는 골목을 돌며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고 있다. 용역직원들이 통행을 제한해 몸싸움 등의 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욕하고 더럽히고 구멍 뚫고…‘내몰기 작전’ 여전 남은 세입자들은 왜 계속 싸우고 있을까. 턱없는 보상비 때문이다. 99년부터 치킨집을 운영해 온 탁문옥(55)씨는 “지금까지 총 7천만원의 투자를 했는데 조합으로부터 통보받은 보상 금액은 1821만원이었다. 10년 전에 들인 돈보다 훨씬 적은 보상비로 어딜 가서 장사를 하란 거냐”며 하소연했다. 참사 뒤 언론을 통해 세입자들의 불만이 많이 알려졌지만 탁씨는 “달라진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합 쪽과 작년 7월, 8월에 두 번 대화한 게 전부입니다. 재평가를 요구해도 ‘당신네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통보된 금액 외에는 더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세무서에 신고된 금액만으로 재평가하면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소득신고를 낮춰잡는 자영업자들의 생리를 조합은 ‘협상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었다. 참사가 잊혀질 무렵 철거공사는 재개됐고 용산 4구역은 전쟁터처럼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앙상하게 남은 콘크리트 구조물만이 집터였음을 알릴 뿐이었다. 철거되지 않은 집의 담벼락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로 만들기 위한 용역들의 ‘작전’인 셈이었다. 주민들은 “욕하는 건 기본이고 동네를 더럽혀서 스스로 떠나게 만든다”며 혀를 내두른다. 용산 4구역의 주거 세입자인 안아무개씨(60)는 “내가 다리가 불편하니 우리 집만은 내버려 달라고 용역들에게 말하자 ‘병신년이 뭐하러 나와 있냐’는 소리만 들었다”며 하소연했다. 안씨의 집 주변은 모두 철거돼 부서진 벽돌들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한 켠엔 음식물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안씨는 “용역들이 밤에 몰래 버려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변에 악취를 풍겨 더 이상 집에 살 수 없게 만드는 흔한 전략”이라고 했다.
용산4구역에 남은 마지막 주거세입자 안아무개씨. 그녀는 조합이 보상금으로 250만원을 제시했다며 분개했다. 영상캡처. 김도성피디.
용산참사 유족 권명숙씨 “남편 꿈에 나타나 아프다고 해요”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