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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건강한 인생…허약함 속의 저력 / 한승헌

등록 2009-04-29 19:04

필자는 감사원장 시절 가끔 테니스를 즐겼다. 외부로 나가기 어려울 때는 1998년 가을 어느날처럼, 인근 정부기관의 공직자들을 초청해 원내 테니스장에서 경기를 하기도 했다.
필자는 감사원장 시절 가끔 테니스를 즐겼다. 외부로 나가기 어려울 때는 1998년 가을 어느날처럼, 인근 정부기관의 공직자들을 초청해 원내 테니스장에서 경기를 하기도 했다.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81
나는 어려서부터 허약체질이었다. 학교에선 체조시간이 싫었다. 초등학교 때 성적표(그때는 ‘통신부’라고 했다.)를 보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갈수록 점수가 낮아졌는데, 그중에 ‘체육’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 큰 병치레를 하지도 않았다. 요즘말로 ‘얼짱’이나 ‘몸짱’이 아니었을 뿐, 사람 노릇은 다 했다. 그리고 칠십 고개의 내리막 지점을 이렇게 멀쩡하게 지나고 있다. 올해 정초부터 지금까지 꼬박 넉 달 동안, 주말 빼고는 매일 <한겨레>에 연재하는 글을 차질 없이 써서(쳐서) 댄 것을 보면, 아직도 여력이 좀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신언서판’이라고 했는데, 우선 ‘신’ 즉 몸매나 풍채가 좀더 좋았더라면 인품에서 위엄과 무게가 있어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내 나이 30대 중반이었을 때, 아는 젊은이가 찾아와 ‘비타0’이란 영양제 광고에 내 얼굴을 넣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내 얼굴이 광고에 들어가면 그 영양제 먹던 사람도 끊을 것이라며 다른 데 가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젊은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변호사님 얼굴을 광고에 넣고, ‘이런 사람은 비타0을’, 이렇게 써놓으면 광고 효과가 배가될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체중은 젊어서부터 줄곧 55킬로그램을 견지해왔다. 군대에서나 감옥에서나 마찬가지였다. 경량급에 부수되는 애환이 없을 리가 없다. 한번은, 내 바로 앞 사람이 승강기에 오르자 과하중 버저가 울렸다. 맨 나중 탄 그가 내리자 안내원이 나보고 타라고 한다. 내가 타자 조용히 문이 닫히고 승강기는 움직였다. 순간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나에게 위로의 시간이 찾아왔다. 한번은 내가 승강기에 마지막으로 오르자 버저가 울렸다. 나는 기분 좋게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무게가 있는 사람이로다.”

요즘 무슨 운동을 하느냐고 묻는 분들에게 가끔 이렇게 대답한다. “나야 변호사니까, 운동이라면 주로 석방운동을 해왔지요.” 그렇다고 나를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그건 오해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골프도 쳤고, 그 뒤로는 테니스를 오래 쳤다. 두 운동 다 프로(혹은 코치)한테서 ‘힘 빼라’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어깨에서 힘 빼라, 손목에서 힘 빼라…. 듣고 있던 내가 한마디 했다. “뺄 힘이 있는 사람에게 그런 말씀을 하셔야지, 나 같은 사람은 뺄 힘이 없는데.”

탁구도 즐겨서 외국 출장 현지에서도 한판 친 적이 있었다. 당구도 군에 있을 때 배워서, 한때 당구장도 드나들었다. 볼링도 재미있는 운동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한강볼링장에도 다녔고, 몇 해 전 평양에 갔을 때는 호텔 지하에 있는 볼링장에서 방북 기념 삼아 핀을 겨냥해 폼을 잡아 보기도 했다.

지금도 골프와 테니스의 빅게임은 열심히 중계방송을 본다. 내 몸의 허점을 아는 듯, 겨울엔 가끔 감기란 놈이 찾아오는데, 어쩌다 오래가는 수도 있다. 자네 감기 아직도 안 나갔느냐고 친구가 묻는다. 이에 “내 감기는 주한미군이네. 한 번 들어오더니 나갈 줄을 몰라.” 이런 대답으로 함께 웃고 나면, 감기도 따라 웃다가 나가버리곤 했다.

내 몸과 관련해서 공개하지 않은 사연이 하나 있다. 1992년 봄, 위암 수술을 받은 ‘대외비’ 말이다. 우연히 건강종합검사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위암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주치의 이상으로 내 건강을 살펴주시던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김병수 원장님을 찾아갔다. 다행히 초기라서 수술만 하면 문제없다고 해서 수술을 받았다. 경과도 좋아서 보름 만에 퇴원을 했다. 그날이 4월 29일, 17년 전 바로 어제였다. 외부엔(측근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건강 체크를 하고 나서 좀 쉬고 있노라고 연막을 피웠다. 암 수술을 받았다고 하면 여러 사람한테 문병 인사 받는 번폐도 감안해서 대외비로 했던 것이다. 입원 중에도 대학 강의를 거르지 않고 나갔으니, 의심할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의 위암 수술 집도를 맡았던 민진식 교수님의 정년 축하 행사에서, 나는 환자 대표(?)로 축사를 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나는 거의 해마다 정기적으로 병원의 건강검진을 받는다. 위내시경은 물론 장내시경도 수면 마취 없이 그냥 한다. 번거롭지만, 한 번 검사를 마치고 ‘무병’ 판정을 받고 나면, 그때부터 1년간은 건강하다는 안도감을 갖고 마음 놓고 일을 한다.

운동 못지않게 정신과 정서의 상태가 건강을 좌우하는 변수라고 생각된다. 마음가짐이 그처럼 중요하다면, 내가 해학 또는 유머를 즐기는 것도 보약 못지않게 일상의 건강에 도움이 된 것이 아닐까.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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