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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사초 쓰듯 4개월…노년에 도진 ‘나라걱정’ / 한승헌

등록 2009-04-30 18:38수정 2009-04-30 23:42

2006년 11월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필자의 숙원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 출판기념회에서 각계 많은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재야 원로들이 축하 케이크를 둘러싸고 축배의 말씀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동 목사,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필자 부부, 박형규 목사, 강만길 교수.
2006년 11월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필자의 숙원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 출판기념회에서 각계 많은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재야 원로들이 축하 케이크를 둘러싸고 축배의 말씀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동 목사,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필자 부부, 박형규 목사, 강만길 교수.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83- 마지막회
마침내 마지막 회의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슨 ‘마침표’를 찍는 기분은 전혀 아니다. 어느 수필집 제호처럼 ‘그래도 못다 한 말’이 왜 이렇게 많은가. 한 일간지가 날마다 그만한 지면을 80회가 넘게 내주었다는 것은 따끈따끈한 ‘변화’를 먹고 사는 신문의 생리에 비추어 범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거기에 내 하찮은 삶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면, 자신의 요령부득을 책망할 수밖에 없다.

자전적인 글에서는 으레 필자가 화자(話者)이자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 나는 이번 연재에서 주인공 아닌 화자 역에 더 마음을 썼다. 언급의 대상인 사건과 사람들을 독자들 앞에 내세워 조명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사건과 재판을 되돌아보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나는 그것이 모처럼 귀한 지면을 독점하는 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의 이야기야 무슨 가치가 얼마나 있겠는가.

나는, 내가 변호한 시국사건을 제대로 파헤치고, 그 ‘피고인’들의 의미 있는 수난을 기록하는 일을 내 소임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글도 쓰고 책도 냈다. 그러는 가운데 과찬도 듣고 상도 탔다.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을 내고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을 때, 그리고 그 간행물로 해서 ‘임창순 학술상’과 ‘단재상’을 받게 되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남이 벌 받은 이야기를 가지고 내가 상을 타다니….’

이번 연재가 지면에 나가는 동안에도 많은 분들이 호평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의인들의 고난 덕분(?)에 내가 박수를 받는 것 같아서 송구스러웠다.

앞에서 말했듯이 화자와 주인공이 분리되다 보니, 자서전에서 필수항목이라 할 결혼·가정·신앙·사적인 주변 이야기 등도 ‘입장’을 못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여러 형태로 나를 도와주신 분들, 직장에서 고락을 함께한 인연을 살려 정을 이어오는 ‘산민회’ 가족들, 어느덧 10년 동안 나에게 따뜻한 선배 대접을 해 준 ‘법무법인 광장’에 대해서도 미처 쓰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 감사한 마음을 잊을 수야 있겠는가. 한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다가 먼저 가신 분들의 이야기도 쓰고 싶었다. 이처럼 미완의 자서전일망정, 나 나름으로는 충실한 증언자가 되고자 힘썼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면서, 나는 ‘길을 찾아서’란 귀한 지면을 ‘독점’하는 보람 못지않게, 마치 사초(史草)라도 쓰는 듯한 ‘착각’을 경험했다. 그리고 내 삶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본시 조용히 살고 싶었다. 내 성품도 야성(野性)과는 촌수가 멀었다. 그런데 내 희망과는 달리 세상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거친 들판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말하자면,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데, 바람이 멎어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는 말 그대로였다.

세상의 수난에는 그냥 앉아서 영문 모르고 당하는 ‘희생’(victim)과 불의와 맞서 싸우다가 당하는 ‘희생’(sacrifice)이 있다고 한다. 나의 작은 고난이 그 어느 쪽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선두의 사람, 즉 앞장서서 일을 꾸미고 이끄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 대열의 어중간한 자리에서나마 결코 이탈은 하지 않고 꾸준히 따라다녔던 것이다. 적어도 군사독재 아래서는 다른 선택이 없기도 했다. 그 잔혹한 시대에, 그 많은 사람들이 참 용케도 하나가 되어 한 방향으로 대장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대견스럽고 감격스럽다. 피차에 소아(小我)를 달리 하면서도 대아(大我) 앞에서는 하나가 되었기에 그 살벌한 독재와 불의를 물리치고 민주세상을 이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고, 어찌 되어 가고 있는가. 비유컨대 전시의 싸움에서는 이기고, 평시의 ‘관리’에서는 실패한 탓이 아닐까. 대아 앞에서 접어두었던 각자의 소아가 재발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새로운 시대의 중심·중핵을 감당할 실체(인물이나 조직)가 형성되어, 어이없이 역진하는 수레바퀴를 제 방향으로 바로 가게 하는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런 우국(憂國)이 70대 중반의 나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이번 연재는 내 삶을 복기(復碁)해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쉬움과 부끄러움, 죄책감과 후회스러움이 머리를 들었다. 그런 속마음을 다 고백하지 못하고 이 글을 맺는 것이 나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소중한 지면을 내준 <한겨레>와 내 글을 맡아서 번거로움을 겪은 편집진, 그리고 지난 넉 달 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내 글의 첫 번째 독자이자 사전 검열·감수자였던 아내의 ‘공로’도 여기에 살짝 얹어놓고 싶다.

이 글을 끝내는 이 시각,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 버스가 서초동 대검 청사에 닿았다는 뉴스가 요란스럽다. <끝>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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