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군일(58) <에스비에스>(SBS) 피디
강수연·채시라 등 스타로 발굴
33년 연출…120살까지 하고파
33년 연출…120살까지 하고파
“대학 때 3시간 30분 정도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어요. 기다리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며 온갖 상상을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죠. 그게 33년의 시작이 됐습니다.” 80년대 인기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와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유명한 운군일(58·사진) <에스비에스>(SBS) 피디가 다음달 30일 정년 퇴임한다. 33년 연출가 일생을 그는 “행복한 기다림”이었다고 정리했다. 촬영을 기다리고, 방영을 기다리고, 다음 작품을 즐겁게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강산이 세 번 변해있었다는 것이다. 그 세월 동안 가장 보람스러웠던 것 역시 ‘배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쫓기듯 촬영해야하는 제작 환경에서 배우들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준 것이 그가 피디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는 것이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어떻게 감정 몰입을 하겠어요. 채근하면 더 못해요. 믿고 기다려주면 기대 이상을 해내요. 가능성을 이끌어내줘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연출하길 잘했구나 뿌듯했습니다.” <고교생 일기>의 강수연·채시라,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최재성·이미연, <두려움 없는 사랑> 고현정 등이 기다려 준 그를 통해 스타가 됐다. 사회 전체가 보수적이었던 70~80년대, 운 피디는 다양한 연출을 시도해 드라마의 장르를 넓힌 주역 중의 한 명이었다. 청소년 드라마의 시초이자 당시 국민 드라마급 인기를 모았던 <고교생 일기>는 남녀공학을 소재로 한 것 자체가 화제였다. “처음에는 윗분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현실에도 없는 남녀공학을 왜 하느냐고요. 하지만 <고교생 일기>가 4년7개월 동안 장수하면서 어린이 프로그램 시간대였던 6시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시간대로 바뀔 정도로 사랑받았죠. 덕분에 35살 어린 나이에 ‘방송을 통한 청소년 선도 유공자’라고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청소년·청춘·멜로 등 작품마다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면서 그가 늘 추구했던 것은 ‘사랑의 힘’이다. 꼴찌, 장애인 등 소외된 계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아픔을 보듬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렸다. 마지막 작품으로 지난주 방송됐던 단막극 <사랑의 기적>에서도 장애를 가진 남자와 사채 때문에 술집에 팔려간 뒤 도망 다니는 여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렸다. 시청률 때문에 내용을 바꾸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온 그가 딱 한 번 내용을 수정했던 적이 있었다. 92년 인기 높았던 <두려움 없는 사랑> 때였다. “원래는 암에 걸린 최재성이 죽는 설정이었는데, 간호사들이 단체로 연락을 했어요. 환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최재성을 살려달라고. 그래서 살렸죠. 드라마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시청률 때문에 자극적인 설정을 쏟아내는 막장드라마를 만드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면서도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꾼 기질도 탁월하다. 1981년 <꼴찌 탈출> 주제곡의 가사를 직접 지었고, <사랑의 기적>도 직접 대본을 썼다. “네다섯살 때 미군이 보는 신문에 만화가 있었는데, 영어도 모르니 그림만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줬어요. 지금도 머릿속엔 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운 피디는 1977년 티비시(동양방송)에 입사해 1980년 한국방송, 1991년 에스비에스로 자리를 옮겼다. 환경은 바뀌었지만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았던 그는 정년 퇴직 후에도 연출자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확실한 것은 120살까지 연출하고 싶다는 것. 마음은 아직 28살이니까요. 하하하.”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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