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적 과제선정 등 본부장 전횡비판 ‘시정요구’
‘MB측근’ 이사장·사무총장, 수용거부뒤 사표수리
‘MB측근’ 이사장·사무총장, 수용거부뒤 사표수리
정부의 연구지원금을 총괄하는 한국연구재단(이사장 박찬모)의 인문사회연구본부 단장들이 본부장의 전횡과 독선에 반발하다 모두 사퇴했다. 해당 본부장도 지난주 내부감사 직후 물러났다. 학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이사장·사무총장을 이명박 대통령의 사람들로 채운 ‘낙하산 인사’나 연구과제 선정 때의 정치적 편향성과 관계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의 김현택 어문학단장(한국외대 교수), 강영안 역사철학단장(서강대 교수), 김세영 법정상경단장(단국대 교수), 임영호 사회과학단장(부산대 교수), 민주식 문화융복합단장(영남대 교수) 등 단장 5명 전원은 지난달부터 이달 사이 모두 재단을 떠났다. 이들은 지난 4월28일 김문조 본부장(고려대 교수)의 독선적인 연구과제 선정과 업무처리 방식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박찬모 이사장에게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집단으로 사표를 냈다.
이에 대해 재단의 박 이사장과 배규한 사무총장(국민대 교수)은 교수들의 요구를 거부한 채 선별적 사표 수리로 대응했다. 임영호 전 사회과학단장은 지난 8일 “무조건 조직의 논리를 따르라는 말을 공개적 자리에서 직접 들었다”며 “연구재단이 조폭 집단처럼 느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강영안 전 역사철학단장도 “재단 운영의 핵심인 독립성·공정성·투명성이 이미 훼손된 상황”이라며 “공동협의체를 구성해서 논의·결정하자고 제안했으나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단과 교육과학기술부는 별일 아니라는 태도다. 박 이사장은 지난 9일 <한겨레>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수들 사이에 소통이 잘 안돼 불거진 일이고, 후임자를 다시 선정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교과부 학술연구정책실 관계자도 “사소한 인간관계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그동안 재단의 연구과제 선정 때 불거진 정치적 편향성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중앙대 독일연구소와 상지대·한신대·성공회대의 진보적 교수들이 공동 설립한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이 연구사업 전문가 심사에서 1위를 하고도 최종심사에서 탈락한 일이 이번 사태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며, 대통령실 과학기술특보(비상근)도 지냈다. 통합 연구재단 출범을 주도한 배 사무총장은 2007년 12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뒤 청와대 안가에서 테니스를 함께 친 ‘11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평소 친분이 있던 김문조 교수를 본부장으로 직접 초빙한 것도 배 사무총장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학계에도 (정부에 비판적인 학자들을 연구지원에서 제외하는)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현 정부가 학문 지원 정책을 악용해 학문을 왜곡하고 학계를 우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옛 학술진흥재단에서 단장으로 근무했던 한 교수도 “근래 들어 대학에 성과주의가 강조되면서 교수들이 돈을 쥐고 있는 재단에 불만이 많아도 불이익이 올까봐 말을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은 지난해 6월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통합돼 출범했으며, 한 해 예산이 2조7000억원에 이른다.
대전/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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