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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레이저’로 삭제 뒤 검찰 압수전 ‘디가우싱’

등록 2010-11-23 08:57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당시 점검 1팀에서 근무한 직원 권중기씨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증거인멸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일행과 함께 법원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당시 점검 1팀에서 근무한 직원 권중기씨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증거인멸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일행과 함께 법원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사찰 수사 보도되던 7월3일에 첫 모의
검찰수사 의뢰하자 5일·7일 거듭 삭제
수사망 피하려 사찰서류 가방에 휴대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의 증거인멸 과정은 가명으로 된 명함을 들고 다니던 사찰 과정만큼이나 은밀하고 용의주도하게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 영화 등에나 나올 법한 증거인멸 과정의 중심에는 진경락(43) 지원관실 전 기획총괄과장이 있었다.

22일 진 전 과장 등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한 법원 판결문의 ‘인정 사실’을 보면, 민간인 사찰 사건 수사가 막 언론에 보도될 무렵인 지난 7월3일, 이인규 전 지원관의 사무실에 김충곤 전 점검1팀장, 원충연 전 사무관 등 불법 사찰 가담자와 진 전 과장이 모여 당시 진행되고 있던 총리실 자체 조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 증거인멸과 관련한 첫모임이었다. 다음날인 7월4일부터 진 전 과장은 적극적인 ‘증거인멸’ 행위에 나섰다.

그는 4일 밤 11시23분께 장진수 사무관에게 두차례 전화를 걸어, “컴퓨터의 자료를 지워도 (나중에) 복구돼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점검1팀의 컴퓨터가 복구되지 않도록 조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장 사무관은 7월5일 새벽 6시에 출근해 인터넷에서 파일 영구삭제 프로그램을 검색한 뒤 ‘이레이저’(eraser)를 내려받아 점검1팀의 컴퓨터 9대에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의 파일들을 깨끗이 지웠다. 5일은 총리실이 검찰에 지원관실의 불법 행위에 대해 수사의뢰를 한 날이다.

진 전 과장의 철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7일 장 사무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지운 것이 확실한지 의문이 든다”며 “돈을 쓰더라도 확실하게 조처하라”고 재차 지시했다. 장 사무관은 이에 정보통신업체들을 알아본 뒤,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못쓰게 만들 수 있는 ‘디가우서’ 장비가 있는 업체를 방문해 이 전 지원관 등 4명이 사용하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영구 삭제했다. 이때 장 사무관은 ‘청와대 대포폰’을 사용해 자신의 동선을 감추려고 애썼다. 이날은 수사 의뢰 이후에도 본격 수사를 미루던 검찰이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하기 이틀 전이었다.

그마저 안심이 안 됐던지, 지원관실은 고전적인 증거인멸도 시도했다. 진 전 과장과 함께 이날 유죄 판결을 받은 권중기(39) 점검1팀 직원은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56·전 ㈜엔에스한마음 대표)씨에 대한 사찰 보고서인 ‘동자꽃 허위사실 유포건 처리결과 보고’ 등 200여쪽의 불법사찰 관련 서류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이들의 혐의에 전부 유죄 판결을 한 재판부는 “지원관실의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사사로운 정이나 조직 보호를 우선시해 계획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것은 국가의 사법기능을 적극적으로 저해하는 범죄”라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그런데도 “(진 전 과장 등이) 범행을 극구 부인할 뿐 아니라, (이같은 증거인멸 행위를) 보안지침에 따른 정당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성의 빛을 찾기 어렵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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