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재하청’ 판쳐 공사비 상당액 수수료로 떼여
국토부 졸속추진…연관없는 토지공사에 맡겨 ‘날림’
국토부 졸속추진…연관없는 토지공사에 맡겨 ‘날림’
경남 지역에서 집수리사업을 하는 ㄱ업체는 지난 10월 중순 ㄷ건설에서 ‘사회취약계층 주택 개보수사업’에 대해 ‘재하청’ 의뢰를 받았다. ㄷ건설은 국토해양부에서 주관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하는 이 사업의 입찰에 참여해 공사를 따냈다. ㄷ건설은 ㄱ업체에 “한 가구당 공사비를 250만~300만원 선에 맞춰주면 재하청을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원래 한 가구당 600만원이 지원되는 사업이다. ㄱ업체 관계자는 “ㄷ건설에서 ‘지방 공사라서 교통비도 많이 들고 세금도 내야 한다’며 그 가격에 공사를 맞춰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올해 처음 시작한 취약계층 노후주택 개보수사업이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이 사업은 집을 갖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주택 개보수가 필요한 이들에게 가구당 600만원가량의 공사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올해 511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문제는 국토부가 급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업무 연관성도 없는 토지주택공사에 사업을 맡기면서 비롯됐다. 토지주택공사는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공사를 시행하다 보니, 소규모 집수리를 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입찰을 진행했고, 이를 낙찰받은 업체는 원칙상 ‘재하청’을 줄 수 없음에도 빠른 공사진행 등을 이유로 다른 영세업체에 다시 하청을 줬다. 이 과정에서 저소득층을 위해 써야 할 공사비의 상당액이 수수료 명목으로 건설업체로 빠져나갔다. 정부 예산이 줄줄 샌 셈이다.
경북 지역에서 이번 사업을 재하청받은 ㄴ업체는 “서류상으로는 재하청을 주는 게 금지돼 있어 우리는 원청업체의 용역을 한 것처럼 계약서를 썼다”며 “원청업체가 비밀 보장을 부탁하며 360만원 정도로 공사비를 맞춰달라고 요구했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300만원대의 공사도 자치단체와 협조가 잘 안돼 졸속으로 진행됐다. 올해 초 사업이 계획됐는데도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자치단체와 협의가 충분히 되지 않은 탓에 10월 중순에야 지원 가구가 결정됐다. 올해 안에 예산 집행이 끝나야 하는 탓에 실제 공사기간은 채 한 달이 안 됐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한 주민은 “지붕 등을 수리받고 싶다고 업체에 문의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일괄적으로 싱크대 개보수를 해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토지주택공사 관계자는 “올해는 예산이 갑자기 확보돼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측면이 있지만 내년엔 다를 것”이라며 “또 지역에서 입찰을 받은 업체들이 영세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저소득층 집수리 지원사업이 여러 부처에서 따로따로 추진돼 대상자가 겹치는 등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의 이번 사업뿐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주거현물급여 집수리사업이나 지식경제부의 에너지효율개선사업 등도 비슷한 취지의 사업이라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중앙부처뿐 아니라 지자체가 따로 추진하는 집수리사업이 여러 개”라며 “분산 집행되는 예산을 모아 관련 부처 협의를 거쳐 한곳에서 집행하면 좀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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