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영장 기각 잇따라
체면 구기고 일정 차질
‘장외 여론전’ 치중 양상
체면 구기고 일정 차질
‘장외 여론전’ 치중 양상
넉달 반 넘게 계속되고 있는 서울서부지검의 한화그룹 비자금 수사가 표류하고 있다.
수사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검찰이 비자금 조성·관리의 ‘키맨’(핵심인물)으로 지목한 홍동옥(63) 여천엔시시(NCC) 사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부터다. 그 뒤로 거대 회계법인 고위 간부의 구속영장, 홍 사장에 대해 재청구한 구속영장은 물론 계열사 대표 등에 대한 구속영장도 법원에서 모두 기각당했다. 특히 김승연(59) 회장 처벌의 징검다리로 평가되는 홍 사장 구속에 실패하면서 이번 검찰 수사가 언제쯤, 어떤 모양새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수사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데다 체면까지 구기게 된 검찰은 무척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다. 대놓고 법원을 비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뾰족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검찰은 25일 “증거인멸의 우려를 범죄사실에만 국한시킨다면 그 증거를 확보한 범인을 우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무죄추정으로 신속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권리는 보장돼야 하지만, 안전장치 때문에 제도가 원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한 전직 대법관의 칼럼을 인용해가며 법원에 에둘러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법원의 제동으로 수사가 주춤거리면서 한화와 검찰 모두 ‘장외 여론전’에 열을 올리는 양상이다. 한화는 이번 수사가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화 쪽은 “법원의 잇단 영장 기각은 애초에 검찰 수사가 무리했다는 방증”이라며 “속히 수사가 마무리되어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도 이에 질세라 재벌기업 비자금 수사와 관련된 자료를 내고 한화 쪽 주장을 반박했다. 서울서부지검 봉욱 차장검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대자동차나 에스케이(SK)그룹 수사를 예로 들며 “경제적 관점에서 ‘검은돈’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국가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앞으로 (수사) 일정이 어떻게 된다고 말하긴 힘들다”고 했다.
검찰 내부에선 수사팀이 구속수사에 집착해 일이 꼬였다는 평가와, 대형 로펌을 등에 업은 재벌기업의 교묘한 경제범죄를 처벌해지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검찰의 한 중견 간부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젠 재판을 통해 홍 사장과 김승연 회장의 유죄를 받아내는 전략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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