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수사’ 넉달 마침표
태광 직원·국세청 말 그대로 수용 “단서 못찾아”
비자금은 일부 ‘가신’이 회장 집에서 직접 전달
태광 직원·국세청 말 그대로 수용 “단서 못찾아”
비자금은 일부 ‘가신’이 회장 집에서 직접 전달
검찰이 31일 태광그룹 수사에서 밝혀냈다고 발표한 비자금의 규모는 4400억원이 넘는다. 객관적 증거로 확인한 것만 이 정도다. 이호진(49) 태광그룹 회장은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빼돌렸고, 그룹 계열사들은 이 회장 일가의 ‘사유재산 증식’에 이용됐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보면, 태광그룹의 비자금 조성은 창업주인 고 이임룡 회장 때 시작돼 2대에 걸쳐 계속됐다. 고 이임룡 회장과 부인 이선애(83) 상무는 1990년대 초 태광산업의 주요 생산시설인 울산공장 임직원에게 나일론과 스판덱스 등의 섬유제품을 세금계산서 없이 대리점에 판매하도록 지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무자료 거래’를 시작했다. 1997년 이호진 회장이 태광산업 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서울 중구 장충동 집에서 이 회장과 이 상무가 함께 무자료 거래 내역과 돈을 건네받았다.
비자금 전달은 이 회장 일가의 신임이 두터운 일부 가신들이 전담했다. 울산공장 임원이던 이성배(55) 현 티알엠(TRM) 대표는 대리점별 무자료 거래 내역을 매달 표로 만들어 태광산업 김아무개 감사에게 보고했고, 김 감사는 ‘사장님 친전’이라는 우편물을 보내거나 한 달에 한두 차례 집으로 직접 찾아가 관련 서류와 비자금을 이 회장 등에게 건넸다.
임직원 급여 등도 이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에 이용됐다. 이 회장 등은 일부 임직원을 2개 계열사에 중복해 올려놓고, 1개 회사 급여만 지급하고 나머지 회사의 급여는 빼돌렸다. 태광산업과 무관한 이 회장의 둘째 누나를 이 회사 상무로 올려 급여를 허위 회계 처리하는가 하면, 작업복비와 사택관리비를 받고도 이를 받지 않은 것처럼 처리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성된 돈이 태광산업 본사 경리직원의 개인 계좌에 모이면 대한화섬 박명석(63) 대표가 이를 찾아 이 상무에게 전달했다.
이 회장은 회삿돈을 빼돌리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계열사 소유인 태광골프연습장이 매년 10억원 이상의 이익을 낸다는 사실을 안 이 회장은 계열사 대표에게 감정평가액을 낮게 책정하도록 한 뒤 시세보다 90억원 싼값에 골프장을 사들였다. 또 2005년에는 자신이 짓고 있는 동림컨트리클럽(CC) 개발비용을 충당하려고 계열사에 값비싼 분양권을 떠넘겨 572억원가량 이익을 올렸다.
검찰은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 가운데 정관계 로비에 쓰인 단서는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검찰의 말을 종합하면, 이 회장은 이 4400억원 가운데 1923억원을 △세금조사 추징금 710억원 납부 △‘묻지마 채권’ 구입 △유상증자 대금 등에 썼고, 남은 2300억원은 차명주식과 차명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사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남는 100억원은 자금 규모가 크고 기간이 오래돼 상당 부분 이자가 포함된 것으로, 4400억원의 사용처는 모두 규명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사 이후 제기된 금융감독원,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로비 의혹에 대해선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2009년 방송법 개정을 위해 방통위에 성접대를 한 전 태광그룹 계열사 직원 문아무개씨를 불러 회사의 ‘직접 지시’가 있었는지를 물었지만, 회사와의 공모 관계를 밝혀내진 못했다. 국세청이 790원의 세금을 추징하고 형사처벌하지 않은 것도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라는 국세청의 해명을 받아들였다.
검찰은 “금감원과 국세청 관계자를 직접 부르고, 방통위 로비 여부도 조사했지만, 물증과 진술을 확보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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