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퍼포먼스 페스티벌인 ‘한국실험예술제’를 개최하는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는 너무나 오른 임대료 때문에 4월에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사무실을 비워줘야 한다. 김백기 대표는 “짐은 옮기면 되지만, 수많은 흔적은 어떻게 옮기겠느냐”며 담배를 피웠다. 코파스 벽에 그려진 그림은 몇해 전 외국의 실험예술가가 그린 것이다.
500개 넘던 예술단체·작업실 대부분 식당·술집으로
월세 치솟아 못 버텨…“문화없는 유흥가 전락 우려”
월세 치솟아 못 버텨…“문화없는 유흥가 전락 우려”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7번지 일대 좁은 골목에는 주택을 개조한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음식점들의 간판이 어지럽게 삐져나와 있다. 1층 족발집 옆으로 난 회색 철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가니 대나무가 솟은 자그만 정원과 건물이 보였다. 건물 벽에는 재미난 표정의 얼굴들이 그려져 있다. 이곳은 2002년부터 국내 최대의 퍼포먼스 페스티벌 ‘한국실험예술제’를 열고 있는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코파스)의 홍대 사무실이다.
코파스는 6년째 쓰던 이 사무실을 오는 4월 비워줘야 한다. 2005년부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80만원을 내며 사무실을 써왔지만, 한달 전 집주인은 임대료 인상을 통보했다. 30평 남짓한 이 공간을 월세 500만원에 쓰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김백기 코파스 대표는 “월세를 5배 이상 올려줘야 하는데 도저히 여력이 없다”며 “듣기로는 2층 사무실도 1층처럼 식당이나 술집 등 상가시설이 들어설 거라고 한다”고 말했다. 코파스 바로 옆 옥탑방 역시 얼마 전까지는 북아트 사무실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월세를 두 배로 올려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지금은 북아트 대신 보증금 3500만원에 월세 80만원짜리 술집이 들어서 있다.
1980년대부터 예술가들의 카페와 작업실이 하나둘 모여들어 인디문화와 예술가의 거리로 유명해진 홍대 앞에서 이젠 예술가들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치솟는 임대료 탓에 ‘홍대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술가들이 이 지역에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께 500여개에 이르렀던 예술단체 사무실과 개인 작업실은 거의 대부분 식당이나 술집 등으로 바뀌었다. 홍대 일대에는 이제 코파스와 상상공장 등 4개 예술단체만 남았다.
“성산동이나 망원동 쪽으로 옮기려고요. 이 돈으론 홍대 앞에서 사무실을 구하는 게 불가능하죠.” 26년 동안 홍대 앞을 지켜온 김 대표는 “홍대를 만든 것은 예술인들인데 이들이 모두 사라진 공간이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대 앞에서 10년째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아무개(38)씨는 “상권이 발달하고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서 땅값이 많이 올랐다”며 “몇년 전만 해도 홍대 앞은 작은 작업실 위주였는데 이젠 학생들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6~7년 전만 해도 주차장 골목의 5평짜리 가건물은 월세 50만원 이하였는데, 지금은 월세 200만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홍대 앞이 급속히 상업화하면서 이곳을 대표했던 홍대문화도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홍대 앞 ‘클럽데이’가 막을 내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클럽데이 관계자는 “처음엔 10여곳의 크고 작은 클럽들이 클럽데이 수익을 모아서 공평하게 배분했는데, 몇년 전부터 매출을 많이 올리는 대형 댄스클럽들이 영세한 클럽에 수익을 나눠주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고 털어놨다. 홍대 앞에 남아 축제 기획을 하는 상상공장 류재현 대표는 “예술가들이 지금의 홍대문화를 만들었는데, 상권이 형성되고 거대자본이 들어오면서 상업화의 부메랑이 예술가들에게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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