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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밥 먹을 곳도 없다” 시급 4320원의 외침

등록 2011-03-08 22:05수정 2011-03-08 22:16

103번째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은 8일 여성노동자들은 꽃샘추위 속 찬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길에 나앉았다.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 임금’을 요구하며 이날 하루 파업을 벌인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이날 오후 서울 신촌동 연세대 본관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풍물패의 공연을 보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수천명의 미국 봉제산업 여성노동자들이 미성년자 노동 금지와 여성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103번째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은 8일 여성노동자들은 꽃샘추위 속 찬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길에 나앉았다.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 임금’을 요구하며 이날 하루 파업을 벌인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이날 오후 서울 신촌동 연세대 본관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풍물패의 공연을 보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수천명의 미국 봉제산업 여성노동자들이 미성년자 노동 금지와 여성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새벽부터 10시간 노동에
손에 쥐는 건 월85만원
아껴써도 남는게 없어
“시급 860원 올려달라” 요구
회사는 거부…대학은 뒷짐
[현장] 고대·연대·이대 청소노동자 ‘공동파업’

8일 오후 2시, 평소였으면 연세대 청소노동자 고영자(53)씨는 청소로 눈코 뜰 새 없을 시간이다. 학생들이 휩쓸고 지나간 강의실의 책상과 의자를 정돈하고, 일회용 종이컵이 꽉 들어찬 쓰레기봉투를 끌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고씨는 청소도구 대신 ‘생활임금 쟁취’라는 구호를 써넣은 빨간 풍선을 들었다. 고씨를 비롯해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청소노동자 860명을 고용한 용역회사가 임금인상을 거부했고, 이들은 ‘빗자루’를 놓았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두 자녀를 둔 고씨는 늘 새벽 4시에 일어나 밥을 차려놓고 5시에 집을 나선다. 일용직 노동자인 남편은 일과 급여가 일정하지 않아 고씨의 수입이 주된 소득이다. 아침·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도 챙긴다. 고씨가 오전 6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4시에 퇴근할 때까지 쉴 수 있는 시간은 밥을 먹는 오전 9~10시, 오후 1~2시뿐이다. 하지만 청소를 하다 보면 이마저도 넘기기 일쑤다. 밥 먹을 공간도 마땅찮다. 고씨는 “경비 아저씨 두 명이 쓰는 경비실에서 밥을 먹고 쉬기도 하는데, 잠깐 눈을 붙이고 싶어도 아저씨들이 불편해하니 그럴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루 10시간씩 꼬박 일해 고씨가 받는 돈은 한 달에 86만원 남짓이다.

상황이 더 나쁜 이들도 있다. 연세대 공대 3층을 청소하는 이아무개(54)씨는 늦어도 새벽 5시30분에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 탓에 새벽 4시에 집을 나선다. 이씨는 “교수들은 아침 일찍 나오는데 그 전에 교수실과 강의실 등의 내부 청소를 마무리해야 한다”며 “연구에 집중할 시간에 아줌마들이 왔다 갔다 하면 거슬려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 청소노동자가 받는 급여는 시간당 4320원으로, 법정 최저임금이다. 용역회사 쪽에 대한민국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인 5180원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최저임금 이상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화여대 청소노동자인 인아무개(61)씨는 “시간당 5180원을 받고 주 40시간을 일하면 한 달에 100만원을 좀 넘게 받을 수 있다”며 “새벽에 잠 못 자고 나와 제일 밑바닥에서 일하는데, 100원 200원도 올려주지 못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호소했다. 토요일에 특근까지 할 경우 인씨의 한 달 월급은 89만원가량으로, 올해 4인가구의 최저생계비 143만9413원에 크게 못 미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울경인지부 조합원인 이들 청소노동자 860명은 이날 오후 2시 연세대 본관 앞에 모여 시간당 5180원의 ‘생활임금’을 요구하는 총파업 투쟁대회를 열었다. 류남미 공공서비스노조 정책국장은 “결국 열쇠는 용역업체가 아닌 대학이 쥐고 있다”며 “대학 쪽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해당 대학들은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원칙론만 밝히고 있다.

한편 고려대와 연세대, 이화여대 학생들은 각각 대책위원회를 꾸려 총파업 지지 서명운동을 시작했으며, 8일까지 4만5000여명의 학생 서명을 받았다. 노조는 이날 하루 파업을 진행한 뒤 다시 교섭을 벌이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15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황춘화 김지훈 박보미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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