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부분의 의대생이 연합해 비밀 누리집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의사 국가시험 문제를 공유해오다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전국 41개 의과대학이 ‘전국의대 4학년 협의회(전사협)’를 조직해 비밀 누리집을 만든 뒤 의사 국가시험 문제를 유출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로 전사협 전 회장 강아무개(25)씨 등 전 집행부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1일 밝혔다. 경찰은 또 실기시험 채점관으로 참여해 자신의 학교 학생들에게 시험문제와 채점기준 등을 알려준 의대 교수 김아무개(49)씨 등 5명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2010년 전사협 회장이었던 강씨 등은 9월 실기시험이 시작되기 전 누리집을 만들었다. 의사시험 실기고사는 9월부터 11월까지 3000여명의 응시생들이 60~70명씩 나뉘어 여러달에 걸쳐 시험을 보는데, 먼저 시험을 치른 학생이 시험문제를 후기형식으로 누리집에 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2009년 처음 시작된 실기시험은 마네킹을 이용해 기본적인 기술을 확인하는 단순수기평가(OSCE)와 훈련받은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환자진료평가(CPX) 등 총 12개의 문제로 이뤄진다. 실기 시험이 치러지는 ‘한국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에는 12개의 방이 있고, 응시생들은 각 방을 이동하며 문제를 풀면 교수들과 환자들이 응시자의 점수를 매긴다. 먼저 시험을 치른 의대생들은 어떤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나왔는지, 솜이 공 모양인지 거즈 모양인지 등의 세세한 내용을 누리집에 올렸으며, 2010년 112개 문항 가운데 103개가 이러한 방법으로 유출됐다.
전사협은 10여년 전부터 조직적으로 운영됐으며, 지난해 실기시험 응시자 3300여명 가운데 27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보안유지를 위해 응시자가 누리집에 가입하려할 때 학교 대표가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등 치밀하게 움직여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한 해 응시생이 3000여명이나 되는데도 시험장이 한 곳밖에 없어 시험이 두 달 넘게 치러지는 등 의사면허 시험 제도에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의사시험의 특수성을 감안해 달라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문정림 대변인은 “실기시험은 지난해가 두 번째로, 정보가 부족했던 학생들이 ‘정보를 더 많이 알겠다’는 차원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이 부분이 고려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환규 전국의사총연합 대표는 “심폐소생을 하고 정맥주사를 놓고 하는 것이 시험문제를 미리 안다고 해서 반드시 잘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부단한 연습을 통해 얼마나 능숙해지는지가 중요하다”며 “또 실기시험은 나올 수 있는 문제가 한정돼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춘화 김소연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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