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점상 부부 '눈물의 탄원'
구청의 강제이전 명령에 14년 터전에서 쫓겨날판
대통령과 ‘일일 풀빵장수’ 인연…“아들 졸업때까지라도…”
구청의 강제이전 명령에 14년 터전에서 쫓겨날판
대통령과 ‘일일 풀빵장수’ 인연…“아들 졸업때까지라도…”
다섯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세상이 조용해졌다. 청각장애 1급인 손병철(52)씨는 농아학교 고등부를 졸업한 뒤 ‘미싱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듣지 못한다고 차별을 어떻게 하던지… 먹고살 걱정을 하다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주셨던 풀빵을 떠올렸죠.” 18일 수화통역사와 함께 만난 손씨는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청각장애인 부인 김숙경(50)씨와 함께 풀빵장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16년째다. 16년 중 14년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골목’에서 보냈다. 현재는 인사동 쌈지길 앞에 자리를 잡고 풀빵 10개를 2000원에 판다. 외국인 손님부터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오는 ‘강남 단골 할머니’까지 그가 만든 풀빵의 맛을 인정해준 이들도 많다. 이렇게 벌어 모은 돈으로 지난해에는 외동아들을 대학에 보냈다.
그런 그가 지난 15일 편지지를 꺼내들었다. “저는 지난해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 대통령과 출연했던 풀빵노점상 부부입니다. 저희가 삶의 터전이었던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종로구가 인사동에 ‘차 없는 거리’ 사업을 추진하면서 노점을 인근 뒷길로 강제 이전하려 해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호소였다. 편지를 품속에 넣고 청와대를 찾은 손씨 부부는 정문에서 저지당했다. 편지는 우체통에 넣었다.
손씨가 이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12월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을 퇴임한 그는 기자들과 함께 인사동에 들렀다가 손씨 부부를 보고 즉석에서 ‘일일 풀빵 장수’를 자청했다. “처음엔 당황했는데 곧 이 전 서울시장이 ‘우리 어머니도 풀빵을 팔았다’며 직접 풀빵을 만들고 봉투에 담아주고 하니 동질감이 느껴졌었다”고 손씨는 그날을 기억했다. 지난해에는 손씨 부부가 <한국방송>의 추석 특집 아침 프로그램에 대통령 부부와 함께 출연했다. 당시 방송사에서 두 부부가 나란히 서서 찍은 기념사진을 손씨는 풀빵 기계에 붙여두었다. 사진을 볼 때면 웃음이 났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사진을 바라볼 때도 손씨 부부는 한숨을 쉬었다. 종로구는 관광객의 보행 편의를 높이고자 지난해부터 노점을 특화거리 3곳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미 종로 대로변의 노점상 600여명은 이주를 마친 상태다. 손씨는 “자리를 옮긴 노점상들이 대부분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며 “자리를 옮기라는 말은 장사를 그만두라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현재 인사동 76개 노점상들은 항의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갑상선을 앓고 있는 손씨의 부인 김씨는 지난 16일 집회에 참가한 뒤 몸져누웠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오는 5월 중순까지 인사동 노점 이전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씨는 “청각장애인인 내가 이 나이에 노점을 그만두면 막일을 하기도 쉽지 않다”며 “대학 입학금만 500만원이 넘는데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장사를 더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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