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삼거리에서 3색 신호등을 따라 차량들이 운행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홍보 소홀…“택시기사도 헷갈려”
10년간 3색·4색 공존계획 혼란
10년간 3색·4색 공존계획 혼란
3색 신호등 시범 시행 둘째날
가야 하나, 멈춰 있어야 하나? 좌회전해야 하나, 직진해야 하나? 멈칫거리다간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21일 광화문~남대문 일대를 지나는 운전자들은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신호등 체계가 갑자기 바뀐 탓이다. 그 전까진 직진 신호와 좌회전 신호가 하나의 신호등에서 번갈아 켜졌지만, 이젠 두 대의 신호등에서 동시에 신호가 들어왔다. 새 신호체계의 시범지역으로 지정된 세종로~남대문 앞 일대에선 ‘좌회전 금지’를 뜻하는 빨간색 화살표시를 좌회전으로 오인하는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좌회전 화살표 3색등(수색역 방향)과 우회전 화살표 3색등(안국동 방향)이 함께 설치된 광화문 앞 네거리에선 운전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택시기사 김아무개씨(63)는 “빨간색 화살표가 가라는 신호 같다”며 “택시기사도 모를 정도로 홍보가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물었다.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모는 최아무개(59)씨는 “바뀐 신호 때문에 하루 종일 헷갈려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외국에서 한다고 그대로 따라 할 필요가 있냐”고 했다. 빨간색 우회전 화살표 신호를 보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던 택시 운전사가 직진 트럭과 접촉사고를 내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기동대 소속의 한 경찰은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인다”면서도 “(근무 나오기 전 3색 신호등에 대한) 교육은 없었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이런 혼란은 경찰과 서울시가 신호등 체계를 바꾸면서 충분한 홍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2009년 4월 말 ‘교통운영체계선진화방안’ 중 하나로 3색 신호등 도입 방침을 발표한 뒤 지난해 8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바꿔 시행에 들어갔다. 경찰은 당시 공청회 한 차례와 지역별 설명회를 했다고 하지만, 일반 운전자들이 알기엔 역부족이었다. 20일부터 서울 시내 11곳에서 시범운영을 하기로 하고도, 경찰은 각 지방경찰청 누리집에 해당 내용을 올려놓고 18일 기자들에게 설명한 것이 전부다.
경찰도 홍보 부족을 시인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충분한 사전 홍보를 하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며 “지금부터라도 시범운영 교차로 현장 주변에 플래카드를 설치하고 교통경찰을 배치해 총력 홍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신호등을 10년여에 걸쳐 순차적으로 바꾸는 것도 운전자의 혼란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전국 2만5000여개 신호등 가운데 향후 교체대상은 2만여개로, 한꺼번에 바꾸지 않고 노후한 것만 (차례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오랜 기간 기존의 4색등과 새로운 3색등이 공존하면서 운전자들을 괴롭힐 수 있다.
경찰 등에선 3색 신호등이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며, 선진국 유명 도시들에선 모두 3색 신호등 체계를 채택하고 있고 4색 신호등을 사용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경찰은 특히 외국인과 같은 초행자들은 화살표가 없으면 좌회전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신호등이란 것은 없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가운데 직접 운전대를 잡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김태완 중앙대 교수(도시공학과)는 “경찰이 학계나 전문가들에게도 충분한 의견수렴을 하지 않은 것 같다”며 “시간을 갖고 시민들에게 알리면서 장단점을 분석했어야 한다. 당분간 혼란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문영 박태우 엄지원 기자 moon0@hani.co.kr
신호 3색등 ‘헷갈리는 좌회전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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