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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VIP 100명만 특혜인출’ 특종보도 어떻게 나왔나

등록 2011-04-27 15:07수정 2011-04-27 16:18

지난 4월 중순 영업이 끝난 시각, 부산저축은행 초량동 본점의 모습. 영업정지 전날인 2월16일 밤에도 이처럼 문을 닫은 채 VIP들을 구제하려는 편법인출 영업을 했다. 박승화 기자
지난 4월 중순 영업이 끝난 시각, 부산저축은행 초량동 본점의 모습. 영업정지 전날인 2월16일 밤에도 이처럼 문을 닫은 채 VIP들을 구제하려는 편법인출 영업을 했다. 박승화 기자
침묵하던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 기자가 사실 확인하자 입 열어
다 알고 있었으면서 보도 뒤에야 수선피우는 금융당국·검찰 ‘답답’
파문이 커지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특혜인출 사건을 특종보도한 <한겨레21> 하어영 기자가 취재기를 보내왔다. 편집자주 

 4월 초였다.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74호 크레인. 그 위에 오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러 부산행 기차를 탔다. 김 위원이 크레인에 오른 지 100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정리해고 반대, 노동생존권 확보’라는 노동자들의 절규에 언론이 더이상 관심을 기울지 않을 때였다.

 집회가 열렸다. 200여명이 조금 넘는 수의 참가자에게 수만평 조선소 마당은 휑할만큼 넓었다. 봄바람은 찼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을 그곳에서 만났다. 피해자들은 억울한 사연을 들어줄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고 했다. “내 돈내놔라, 내 돈내놔라.” 연단에 선 할머니의 절규가 마이크 엠프의 용량을 넘어섰다. 뭐라 말씀하시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문장은 툭툭 끊어지며 이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번 돈인데….” 정리해고 철회 투쟁의 팔뚝질에 그 할머니의 말씀은 물기를 덧댔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한진중공업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같이 억울한 거 아니냐”며 눈물을 쏟아냈다. 한진중공업 집회를 찾은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너도나도 마이크를 원했다.

 그렇게, 운명처럼 부산저축은행 문제가 내게 다가왔다. 피해자들이 앞다투어 밝힌 사연에서 영업정지 당일의 현장, 그 전날의 현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3월부터 고민하던 저축은행 관련 기획기사 준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절실하게 느꼈다.

하루 한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 가사도우미 일을 마치고 다시 한시간을 걸어, 그렇게 버스비를 아끼고 끼니를 거르며 모은 돈을 부산저축은행에 들러 저축을 해온 한 할머니도, 동네 마실 나가듯 날마다 은행에 나간 할아버지도 그 날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 날따라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증언했다. 피해자들은 돈이 떼이는 그 날 그 순간 창구직원들의 표정과 말 한마디까지 너도나도 보탰다.

그들의 사연을 들고 은행관계자들을 만났다. 영업정지 이후 은행관계자들은 언론접촉을 피했다. 접촉 금지령이 떨어진 듯했다. 그 때까지도 ‘그 분’들의 인출은 소문이고, 짐작일뿐 실체를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 날의 공모는 강고했다. 침묵의 카르텔을 깰 빈틈을 찾기는 어려웠다.

 피해자들의 사연을 중심으로 기사를 준비하던 중,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이 ‘가장 선량한 고객’이라 부르는 고액 예금주, 곧 VIP가 등장했다. 그에게 영업정지 전날 밤 은행 쪽의 안내로 몰래 돈을 찾아간 사실에 대한 자책은 없었다. 그 또한 후순위채권으로 몇 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했다. 돈많은 사람으로서 미안함은 있는 듯 했다. 그도 사람이었다. 마침내 VIP 편법특혜인출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부산저축은행이 있는 부산을 다시 찾았다. 그 때부터는 한달음이었다. 은행관계자들의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다. 임직원의 편법인출, 금융감독원 직원이 편법 인출 현장에 있었던 사실, 금감원이 인출금지 공문을 긴급하게 발송한 사실,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이 금융감독당국에서 영업정지 신청서를 영업정지 전 날 은행에 제출하게 한 사실까지, 많은 사실들을 확인했다. 가진 자와 힘센 자들이 공모한 침묵의 카르텔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들끓는 울분은 이제 공분이 됐다. 24일 <한겨레21>의 단독보도가 나간 뒤 이명박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와 엄격한 대응을 지시했다. 청와대가 나서자 금감원은 두 달여의 직무유기는 까맣게 잊은 듯 스스로 이미 다 조사해온 것처럼 이야기한다. 영업정지 전날 부당인출된 예금의 환수를 검토하겠단다. 검찰 중앙수사부도 갑자기 바빠졌다.

 기자로서 단독보도를 한 사실이 기쁘다. 아무도 모르고 그냥 덮였을 수도 있던 사실을 세상에 공개할 수 있어 기자된 보람을 새삼 느낀다. 버스비를 아끼고 끼니를 걸러가며 한푼두푼 모아온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보도 뒤에야 수선을 피우는 금융당국과 검찰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지켜볼 일이다. <한겨레21>이 지적했듯이, 71개 중소 저축은행 가운데 32곳이 파산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정부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 제도적 보완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피 같은 소액 예금을 떼이는 사람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함께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하어영 기자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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