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지연손해금(이자) 삭감 판결 뒤 원심 대비 항소심 손해배상액 비교
‘이자 삭감’ 대법 판결뒤 ‘원금’ 올리는 항소심 잇따라
원심과 격차 줄이기…기준 없어 재판부별 편차 논란
원심과 격차 줄이기…기준 없어 재판부별 편차 논란
지난 1월 대법원은 국가가 조작간첩 사건 등 불법행위에 손해배상을 할 때, 위자료를 늦게 지급한 데 대한 ‘지연손해금’(이자)을 불법행위의 발생 시점부터가 아니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이후부터 계산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항소심을 진행중인 용공·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의 배상금이 크게 줄자, 일선 법원에서는 항소심 재판부가 위자료를 원심의 두 배로 올리는 등 배상금 격차를 줄이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7부(재판장 이한주)는 이중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이수근씨의 간첩행위를 도왔다는 이유로 20년 넘게 징역을 산 이씨의 처조카 배경옥(73)씨와 그의 가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42억여원을 배상하라고 4일 판결했다. 이는 1심 배상액 68억여원의 3분의 2 수준이다.
배상액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지연손해금을 소송 제기 이후부터 계산했고, 이자는 1심이 인정한 48억여원에 견줘 대폭 깎인 1700만여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위자료를 41억8000만여원으로 1심에 견줘 두 배 이상 높였다. 재판부는 “1심의 지연손해금은 위자료 원금의 200% 수준이었는데, 대법원 판결로 지연손해금이 거의 인정되지 않게 됨에 따라 원고들이 지급받을 배상액이 크게 줄었다”며 “이에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살리면서 원고들에게 1심보다 과도한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위자료 원금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위자료 계산에 특별한 기준이 없어 항소심의 배상액은 원심의 30~60% 수준에서 들쭉날쭉하다. 1980년 대공분실에 연행됐다가 고문을 못 이겨 간첩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신귀영(74)씨와 가족 등 6명이 낸 소송에서 지난 3월 부산고법은 원심의 61.33%인 37억5780만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도 지난 4월 간첩으로 몰려 징역 10년을 산 김기삼(82)씨와 그의 가족 6명에게 원심의 51.91%에 해당하는 배상액을 판결했다. 반면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8년간 옥살이를 하다 숨진 정만진씨의 유족에겐 원심의 33.89%인 4억여원이 항소심에서 인정됐다. 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 원심보다 위자료 원금 자체를 높게 책정하고 있지만, 어느 수준으로 결정하는지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결정이라 당분간은 편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월13일 조용수 전 <민족일보> 사장 유가족이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로부터 장시간이 경과해 통화가치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는데도 덮어놓고 불법행위 때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현저한 과잉 배상의 문제가 제기된다”며 원심에서 인정했던 99억원을 29억7000만원으로 깎아 확정판결한 바 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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