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상반된 반응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정부 합의안을 놓고 경찰 수뇌부와 일선 경찰의 반응은 크게 달랐다.
박종준 경찰청 차장은 20일 오후 합의 내용을 발표하면서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경찰이 수사개시권을 갖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차장은 “경찰의 수사 현실을 충분히 반영했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도 “더이상 국가기관 간의 갈등으로 국민들께 염려를 끼쳐드려선 안 된다는 견지에서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선 경찰의 목소리는 확연한 온도차를 보였다. “결국 파워게임에서 또 졌다”거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개악”이란 성토가 쏟아졌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검찰에 유리한 안에 합의해준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밑바닥 의견들이 많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경찰의 공식 입장은 “형소법 제196조 제1항에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하지 못한 채 검찰 지휘권을 못박을 경우 절대 합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 경찰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합의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로 불려간 조 청장이 더는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결국 검찰의 힘에 눌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합의안 발표 직후 항의 의견이 빗발치면서 한때 경찰 내부통신망이 불통되기도 했다. 일부에선 “직을 걸고 수사권 관철을 주문했던 조 청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차라리 이번 국회에서 무산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반면 ‘검·경 힘겨루기’에서 승리한 검찰은 짐짓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합의안에 검찰 요구가 상당부분 반영된 것엔 안도감을 나타내면서도, 향후 ‘법무부령’ 개정과 실무 적용 과정에서의 마찰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 검찰 간부는 “수사지휘권은 보장이 됐지만, 결국 경찰이 ‘모든 수사’를 독자적으로 개시할 수 있게 됐고, 더구나 내사는 아예 ‘논외’로 굳어졌다”며 “앞으론 경찰 내사에서 인권침해 등 문제가 생겨도 ‘이건 수사가 아니라 내사니까 검찰은 간여하지 말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통제할 방안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안이 불만족스럽다는 기류도 없지 않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실무적으로 신속한 수사가 필요한 절도·강도 등 ‘현장형 범죄’에 한정해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인정했다면 아무런 부담이 없었을 것”이라며 “총장이 왜 수사권 자체에 손을 대는 저런 합의문에 서명을 했는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문영 노현웅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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