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명의 퀵서비스 노조원이 직접 ‘창립 멤버’로 참여해 만든 ‘오퀵’ 직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지하철 서대문역 근처에서 잠시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노동자 50여명, 회사지분 보유해 ‘주주 이자 기사’
수수료 낮추고 유족돕기 기금·장학금 마련 등 구상
수수료 낮추고 유족돕기 기금·장학금 마련 등 구상
김태한(40)씨의 월급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는 지난 9년 동안 퀵서비스 기사로 일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주문 한 건당 업체에 내는 수수료가 12~13%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기본이 23%이고, 35%까지 떼어가죠. 유류비가 오르고 업체간 가격경쟁까지 심해지니 한 달에 200만원 벌이도 힘듭니다.” 김씨는 “건당 수입이 줄어드니 퀵서비스 기사들이 더 많은 주문을 받으려고 오토바이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속도를 낼 때마다 2년 전 발생했던 교통사고가 생각 나 두렵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시장 규모가 연 2조원(지식경제부 추산)에 달할 정도로 성장한 퀵서비스 업계가 여전히 규제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아무 제한없이 업체를 운영할 수 있고, 주문 한 건당 받는 수수료에도 상한선이 없다. 이러다보니 업체간 경쟁은 치열해지고, 업주들은 수수료를 마구 올리는 방식으로 퀵서비스 기사들을 쥐어짜 이익을 낸다.
퀵서비스 업계의 이런 현실에 맞서 ‘착한 퀵’이 도전장을 던졌다. ‘퀵서비스 기사의 안전과 행복을 생각하는 회사’를 목표로 이번 달부터 영업을 시작한 ‘오퀵’이 주인공이다. 민주노총 퀵서비스 노동조합과 시스템 개발업체 ‘더부러 더버러’가 지분을 절반씩 갖고 있고, 민주노총 퀵서비스 노조원 50여명이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착한 퀵’에 대한 구상은 지난해 여름 시작됐다. 당시 식당에 갔다가 손에 콜 수신기를 들고 밥을 먹는 퀵서비스 기사를 발견한 모성훈 ‘더부러 더버러’ 대표는 “퀵서비스 기사들이 밥 먹는 순간에도 주문을 확인하며 급하게 뛰어다니지만 수수료·기름값·보험료·밥값·주문 수신 프로그램 사용료까지 내고나면 남는 돈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올해 초 모 대표는 고객이 퀵서비스 기사를 지목해 직접 주문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그는 이 앱을 들고 퀵서비스 노조를 찾아가 ‘착한 퀵’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앱 사용료는 월 1만원, 업체 수수료는 15%로 대폭 낮추는 조건이었다. 모 대표는 업체를 운영해가며 사용료와 수수료를 더 낮추거나 아예 없앨 생각이다. 앞으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갖추면 모든 퀵서비스 기사가 주주가 되고, 대표이사도 퀵서비스 기사가 맡는 식으로 회사 형태도 바꿀 계획이다.
회사의 모든 이익은 노동자를 위해서만 사용하기로 했다. 수익의 일부를 적립해 사고로 숨진 퀵서비스 기사의 유족을 돕고 기사 자녀들에겐 장학금도 줄 계획이다. 또 서울 강남, 광화문, 여의도 등 주요 거점에 기사들을 위한 휴게공간을 마련하고, 세무대리를 통해 기사들의 소득 신고와 세금 납부, 산재 보험료 불입 등을 회사가 대신해준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모 대표는 “회사 설립을 준비해온 최근 두 달 동안에만도 두 명의 퀵서비스 기사가 사고로 숨졌는데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며 “정글같은 시장에서 약자인 퀵서비스 기사를 위한 회사가 성공하는 사례를 만든 뒤 대리운전 시장으로까지 실험을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