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법률과 동일한 효력…헌재서 심사 이뤄져야”
재심 무죄에 첫 항소…“검찰 인식 퇴행” 비판 일어
재심 무죄에 첫 항소…“검찰 인식 퇴행” 비판 일어
대법원이 지난해 12월 유신 시절의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데 대해, 검찰이 “긴급조치 위헌 판단은 헌법재판소에서 해야 한다”며 위헌판결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과거사 정리와 유신 헌법에 대한 퇴행적 관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0일 서울중앙지검 박관수 검사는 서울고법에 13쪽 분량의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같은 달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우진)가 대통령긴급조치 위반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서아무개(59)씨 등 3명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데 따른 항소장이었다. 해당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 판결함에 따라 “법령이 위헌일 경우, 해당 법령으로 공소가 제기된 사건은 무죄”라며 서씨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장에서 대법원의 긴급조치 1호 위헌판결이 헌법에 규정돼 있는 사법심사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는 헌법재판소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관련 재심사건에서 무죄가 잇따랐지만, 검찰이 이러한 항소장을 제출한 건 처음이다.
검찰은 “긴급조치는 당시 유신헌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형식적 의미의 법률과 동일한 효력이 있었다”며 “긴급조치의 근거가 된 유신헌법도 국민적 동의를 받았으므로, 긴급조치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긴급조치는 국회의 입법권 행사를 전혀 거치지 않아 ‘법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긴급조치 1호 위헌심사기관은 대법원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또 “긴급조치권 발령의 상황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권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었고,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긴급조치 발령상황이 아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혀 긴급조치의 존재 이유를 두둔하는 듯한 의견도 밝혔다.
이에 대해 김형태 변호사는 “검찰이 시대적 상황에 근거해 긴급조치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듯한 인식을 보이는 것 자체가 퇴행적인 현상”이라며 “검찰이 법원에 항소장을 내더라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판단될 수밖에 없는데도 이같은 항소장을 낸 것은, 과거사 정리 문제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 기관간 갈등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일선 법원에서는 긴급조치 1호를 위헌으로 보고 ‘형사보상금’ 지급 결정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법원은 대법원 위헌판결 뒤 모두 9건의 형사보상금 지급 판결을 냈다. 대법원의 위헌판결이 나기 전까지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은 무죄가 아닌 ‘면소’(법령이 사라짐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음) 판결을 받아 형사보상금 청구 대상이 아니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