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 “도청 안했다”
한선교 의원쪽도 진전 없어
양쪽에 출석 재요구 하기로
한선교 의원쪽도 진전 없어
양쪽에 출석 재요구 하기로
경찰의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도청 의혹 수사가 벽에 부닥쳤다. 민주당의 고발로 시작된 이번 수사가 15일로 보름째를 맞았지만 경찰은 수사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미궁을 헤매고 있다.
민주당이 도청 당사자로 지목한 <한국방송>(KBS) 장아무개(32) 기자의 조사는 싱겁게 끝났다. 장씨는 경찰의 출석 요구 시한을 하루 넘긴 14일 밤 9시께 변호사와 함께 경찰에 갑자기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경찰이 2시간 남짓한 조사에서 확보한 진술은 “취재활동을 했을 뿐 도청을 하지 않았다”는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장씨를 일단 돌려보낸 뒤 “조사 시간이 너무 짧아 장씨에게 경찰이 압수한 노트북·휴대전화 등이 왜 당시의 것과 다른지, 회의 당시 ‘귀대기’ 상황이 어떠했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묻지 못했다”고 밝혔다.
도청 의혹의 ‘입구’에 해당하는 장씨 조사와 마찬가지로, 경찰은 ‘출구’에 해당하는 한선교(52)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조사에서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애초 경찰이 한 의원에게 통보한 출석 시한은 이날이었지만, 그는 ‘면책특권’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다. 한 의원은 지난 13일 귀국하는 길에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찰에 나갈 이유가 없다. 설령 도청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때문에 난 (조사받을 대상에) 해당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의정활동의 일환이기 때문에 ‘가벌성’이 없고, 따라서 처벌을 전제로 하는 경찰 조사에도 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도청 의혹을 일으키고도 경찰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한 의원의 태도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한 의원이 경찰 출석을 고려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아직까지 한 의원 쪽에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난 여론이 높아져 한 의원이 제 발로 걸어 나와주길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거대 방송사와 여당 의원을 동시에 조사해야 하는 경찰은 이렇듯 ‘냉가슴’을 앓고 있지만, 상황을 돌파할 ‘물증’을 확보한 것도 아니어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경찰은 내심 장씨 집 압수수색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문제가 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취재 당시 장씨가 사용한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한국방송을 압수수색하는 ‘강수’를 둘 형편도 못 된다.
경찰은 다음주 중으로 장 기자와 한 의원에게 다시 출석요구서를 보낼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제대로 된 수사를 위해서는 두 사람에 대한 조사와 자료 확보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며 “언론인과 정치인의 양심으로 경찰 조사에 협조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경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한 한 의원에 대해 “불법 도청의 결과물 입수는 면책특권의 범위가 아니다”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민주당은 한 의원 등에 대한 강제수사를 경찰에 요구할 계획이다. 임지선 석진환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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