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여의도샛강 옆 올림픽도로에 침수된 차들이 이틀째 방치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판례로 본 수해 소송
‘1984 망원동’ 첫 인재 인정
2001년 동대문구 주민은 패소
법원, 불가항력 판단이 변수
‘1984 망원동’ 첫 인재 인정
2001년 동대문구 주민은 패소
법원, 불가항력 판단이 변수
서울 우면산 일대와 경기도 동두천·포천 등지에서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대규모 인명 피해 등이 발생하면서 ‘인재’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수해가 국가(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피해자는 소송을 통해 금전적인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피해자는 국가나 지자체의 ‘불법행위’ 등 잘못을 입증해야 한다.
■ ‘인재’ 되려면 명백한 ‘하자’ 있어야 수해를 ‘인재’로 보고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은 1984년 ‘망원동 수재 사건’이다. 1984년 9월 330㎜가 넘는 집중호우로 망원동 유수지 펌프장 수문이 무너지면서 1만800여가구가 물에 잠겼고 수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고 조영래 변호사의 주도로 첫 ‘집단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망원동 수해는 유수지 수문상자의 하자로 발생한 것이므로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영조물 설치상의 하자’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사고에도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고도의 안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망원동에 쏟아진 비는 불과 12년 전의 홍수위에도 미달하는 수준이었다”는 게 당시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이 소송으로 1만2000여명의 수재민이 53억2000여만원을 배상받았다.
시설물에 하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불가항력인 경우, 법원은 관리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2001년 7월 폭우로 수해를 입은 동대문구 주민 485명은 “빗물펌프장의 용량 부족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대법원은 “빗물펌프장의 배수용량이 부족했던 것은 인정되지만 당시 기술수준에 비춰 예측된 재해를 방지할 수 있는 정도의 안전성을 갖추고 있었다”며 “침수는 예견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피해였다”고 판결했다.
■ ‘불가항력’과 ‘인재’가 만났을 때 지자체의 관리소홀이 입증됐다 하더라도 예측치를 넘어서는 비가 쏟아져 피해가 커진 경우, 법원은 지자체의 책임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는 판결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03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제방이 붕괴됐고, 경상북도 영천의 한 공장은 침수피해를 봤다. 대법원은 “태풍 루사로 인해 전국에서 246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정부는 특별재해지역을 선포할 정도였다”며 “집중호우라는 자연력과 제방의 하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므로 배상책임을 3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누전으로 인한 감전사도 지자체로부터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2001년 침수된 곳을 지나다 감전사한 행인의 유가족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누전이 발생했는데도 누전차단을 위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지자체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법원 관계자는 “국가와 국민은 계약관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소홀 등 국가가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며 “의무를 위반했다면, (그다음엔) 피해가 예측 가능한 것이었는지 등을 따져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