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서비스개통때 받은 포괄적 동의는 무효”
1명당 10만~20만원 지급…유사소송 잇따를듯
1명당 10만~20만원 지급…유사소송 잇따를듯
기업이 ‘명확한’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고객의 정보를 수집·이용했다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기업의 무분별한 고객정보 수집과 이용에 제동을 건 첫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지상목)는 29일 강아무개씨 등 2573명이 “고객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한 데 대해 (원고) 한 사람당 100만원씩을 지급하라”며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에 전혀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 2292명에겐 20만원씩, 동의는 했으나 동의의 범위를 넘어 정보를 이용당한 피해자 56명에겐 1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에 따른 에스케이브로드밴드의 총배상액은 4억5800여만원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은 (국민이) 자신의 정보공개 및 이용을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있다”며 “인터넷망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하거나, 필요한 범위를 과도하게 벗어나 수집하는 것, 수집 목적에 어긋나게 개인정보를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행위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런 동의를 서비스개통 확인서와 함께 포괄적으로 받는 것은 유효하지 않고, 고객이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 도용으로 고객이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회사 쪽 주장에 대해선 “전화사기(보이스피싱)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실에서 개인정보가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에스케이브로드밴드는 2006~2007년 자사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가입자 51만여명의 이름·전화번호·생년월일·주소 등을 2008년 9월 ㅇ텔레마케팅에 제공해 부가서비스 가입 유치에 활용해 왔으며,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회원들의 명의도용 여부 확인이나 피해 회복 등에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시정명령을 한 바 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유사소송이 잇따를 경우 에스케이브로드밴드가 지급해야 할 배상금은 수십억원에 이를 수도 있다. 같은 건으로 법원에서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는 2만598명으로, 배상금이 10만원씩만 인정돼도 20억원을 넘는다. 또 개인정보가 도용된 고객은 모두 51만여명으로, 현재 소송을 제기한 고객은 그 가운데 3.9%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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