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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4년만에 벗은 간첩누명 “이젠 진실 말할것”

등록 2011-08-17 20:50수정 2011-08-17 23:04

‘조총련에 포섭 혐의’ 구명우씨 재심서 무죄 선고
“아들에게 숨겼던 아픈 과거, 이젠 당당히 말할것”
아들 정우(27·가명)씨의 기억 속 ‘아빠’는 어마어마하게 대문이 큰 집에 살고 있는 부자다. 어린 시절 아빠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지만, 딱 한번 큰 대문을 지나 아빠를 만났던 것 같기 때문이다. “옛날에 우리집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았을 거야” 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구명우(54·사진)씨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5개월 된 아들과 이별한 뒤, 아들을 처음 본 곳은 대전교도소였다. “수감생활 동안 단 하루도 잠을 이룬 적이 없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고통받고 있을 아내, ‘아빠’라고 제대로 불러보지 못하는 아들이 생각나 하루하루가 비탄의 나날이었습니다.” 구씨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소속 공작원에게 포섭돼 간첩행위를 한 혐의(국가보안법의 간첩)로 1986년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수사관들에게 체포돼 징역 5년3개월의 형을 살았다. 수감 기간 동안에는 ‘아빠가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며 아들에게 옥살이를 숨겼다.

출소 뒤, 가정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지난 ‘옥살이’가 억울했지만, 그보다 생계가 우선이었다. 5년 만에 ‘아빠’라며 나타난 구씨를 낯설어하는 아들과의 벽을 허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아들과의 대화는 겉돌았고, 구씨 스스로도 자유로운 생활이 어색했다. 그런 중에도 경찰은 ‘보안관찰’을 이유로 수시로 찾아왔고, 아파트 경비원에게 구씨의 동향 등을 캐물었다.

세상에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구씨 간첩사건은, 2006년 구씨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신청으로 조사가 시작됐고, 2009년 4월 실체가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구씨는 일본에서 일한 회사가 조총련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음에도, 보안사는 42일간의 불법 구금과 고문 및 가혹행위로 구씨로부터 허위자백을 받아 간첩사건으로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1년 뒤 구씨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 모든 ‘싸움’을 구씨는 아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원심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지난 11일 서울고법 404호 법정. 재심 재판에서 재판장이 주문을 읽는 순간 구씨는 아들 정우씨가 떠올렸다. 구씨는 ‘아빠는 간첩이었다’고 아들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구씨는 “내가 간첩혐의로 징역을 살았다는 걸 평생 모르고 살아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족의 아팠던 과거가 아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써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결국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구씨는 18일 무죄 선고 기사가 실린 신문과 술 한병을 들고 아들과 얼굴을 마주할 생각이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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