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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베란다 서면 자살충동”…그들의 삶은 지옥이었다

등록 2011-08-18 21:35수정 2011-08-19 16:52

A banner advocating for reinstatement of laid-off workers hangs across from the main entrance to a Ssangyong Motor factory, Aug. 18.
(Photo by Kim Tae-hyoung)
A banner advocating for reinstatement of laid-off workers hangs across from the main entrance to a Ssangyong Motor factory, Aug. 18. (Photo by Kim Tae-hyoung)
쌍용차 해고자 가족의 생활
이유없는 자책·한없는 무력감·갑작스런 분노 시달려
정혜신 대표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정책 필요”
이것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가족이 겪은 ‘지옥에 관한 이야기’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공동대표가 ‘지옥의 심연’을 들여다봤다. 정 박사와 마인드프리즘(정신건강 컨설팅 기업)은 지난 3월부터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의 치유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두번째 상담은 파업 종료 2년째 되는 지난 6일 끝났다. 두 차례의 상담 참여자 24명 중엔 5쌍의 부부가 포함돼 있다.

해고자 남편에게 77일간의 파업과 이후 2년은 지옥이었다. 남편의 지옥은 부인의 지옥이었고, 아이들의 지옥이었다. 지옥을 겪으며 가족 전체가 지독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됐다. ‘죽음의 충동’과 ‘한없는 무기력함’과 ‘치솟는 분노’가 온 가족을 휩쓸었다.

“어느 순간부터 8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데 높이감이 별로 없어요. 뛰어내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부인 지영순(가명·34)씨는 남편 박남기(가명·36)씨가 파업중일 때 가족대책위원회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그는 자신의 활동 때문에 남편이 해고됐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행복을 원했던 내가 남편 넥타이로 목까지 매는 현실”을 그는 못 견뎌 했다.

극단의 심적 고통은 ‘죽음에 대한 긴장감’을 떨어뜨렸고, 순간순간 나타나는 분노는 엉뚱한 곳을 향했다. 장종업(가명·38)씨는 파업 후 2개월간 구속수감됐다. 지난해 7월 구치소에서 받은 정신과 처방약 30여 봉지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파업 때 경찰특공대의 진압을 피해 공장 옥상에서 뛰어내리다 날아다니던 볼트에 맞았다. 2년이 지났으나 흉터는 도장으로 찍은 듯 볼트 모양 그대로 남았다. 그의 큰아이는 학교에서 수학여행 숙박비를 지원받아야 했다. 초등학교 6학년(180여명) 전체에서 숙박비를 내지 않은 5명에 포함됐다. 마침 2학년인 둘째가 친구들과 먹을 간식을 챙겨 달라며 떼를 썼다. 부인 구정숙(가명·37)씨는 “순간 서럽고 기가 막혀” 아이 교과서로 둘째를 마구 때렸다. “때렸는데 애가 울지도 않아요.” 그날은 둘째의 생일이었다. 박찬용(가명·37)씨 부부도 “차를 몰고 회사로 밀고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고 했다. 최철규(가명·41)씨는 술을 마신 뒤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기도 했다.

(클릭하면 확대)
공포스러웠던 기억들은 제자리에서 튀는 레코드판처럼 느닷없이 나타나 집요하게 괴롭혔다. 한중호(가명·42)씨는 파업 막바지 진압 때 경찰특공대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다. 파업 종료 직후 경찰은 구속중이던 한씨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부인 남현정(가명·39)씨가 근무하는 병원이었다. 치료 목적이었으나 수갑을 채운 상태였다. “수건이나 옷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남편이 수갑을 차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었어요.” 남씨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죽을 먹고 있는 남편 손에서 수갑을 풀어주지 않았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정 박사는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이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8가지로 분류했다. △늘 가까이 와 있는 죽음 △끝없는 무력감 △고통스러운 기억들의 반복 △무능하다는 자책 △아무도 모르는 고통 △억울함 △시시때때로 솟구치는 분노 △사람에 대한 불신. 해고자 가족들의 자살과 돌연사도 ‘살고 싶다’는 응급구조 신호가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분석했다. 정 박사는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분노를 꺼내놓지 못하면 내 안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혼자 산화하는 꼴이 되고 만다”고 우려했다.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공동대표는 “사람에겐 ‘마음’이 있다”고 했다. “노동자 정리해고를 노사관계로, 경제적 유불리로, 산업 구조조정 차원으로만 바라보면 그들의 마음은 파헤쳐지고, 찢기고, 뒤틀리며 더 큰 비극을 부른다”는 얘기다. 정 박사와 이 대표가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두 사람은 미국의 ‘아임소리 법’(I’m sorry law)을 예로 들었다. 5개 주를 제외한 미국 전역에서 도입한 이 법은 의료사고가 났을 때 의사가 환자(가족)에게 사과(의료과실 증거로는 채택되지 않음)부터 하도록 해 의료소송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두 사람이 노동자를 위한 ‘심리치유센터’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앞장서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박사와 마인드프리즘은 두 차례의 치유상담 결과를 정리한 ‘숨결 보고서’ 최종본을 9월말께 발표할 예정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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