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간 일하다 몸 망가져 …복지공단 “산재 불인정”, 기나긴 법정투쟁 끝 승소
식당노동자 77%가 골병 대부분 “참거나 자비치료”, 산재 처리는 5%에 그쳐
식당노동자 77%가 골병 대부분 “참거나 자비치료”, 산재 처리는 5%에 그쳐
2006년 10월21일 결국 허리에 사달이 났다. 그날 밤 11시께 울산 현대자동차 식당에서 조리원 박영례(62)씨는 그릇이 가득 담긴, 50㎏이 넘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동료와 함께 들어올리다가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사흘 동안 끙끙 앓다가 병원에 갔더니 ‘요추부 염좌, 요추간 3·4·5번 추간판탈출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19년 동안 식당일을 하면서 박씨의 허리는 이미 고장이 날 대로 난 상태였다. 39살이던 1987년 현대차 울산공장에 식당조리원으로 입사할 때만 해도 박씨의 허리는 ‘쌩쌩’했다. 격주로 12시간씩 주야간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식당에서 박씨는 매일 1200인분의 점심과 900인분의 저녁식사, 800인분의 야식을 준비했다. 갈수록 팔다리·허리가 아파 2004년부터는 자기 돈을 들여 병원에 다녔다.
하지만 2006년 허리를 다치고 나서는 통증이 너무 심해 일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식당노동자가 일을 그만두는 때는 이처럼 몸이 아파 ‘낙오’하는 순간이다. 박씨는 회사 노동조합을 찾아가 상담을 받은 뒤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는 요양신청서를 냈다. 한달 뒤 근로복지공단은 “요추간 추간판탈출증은 업무상 사유가 아니라 퇴행성 질환일 뿐”이라며 불승인 처분했다.
“식당에서 일하느라 몸이 망가졌는데 산재가 아니라니 법적으로 따져보자고 했죠. 그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어요.” 2008년 박씨는 서울행정법원에 산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이듬해 행정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업무상 재해가 되려면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며 “박씨의 허리 손상은 사고 이전부터 존재한 퇴행성 질환”이라고 판단했다.
박씨는 항소했다.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이 행정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에는 근로복지공단이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했다. 허리통증처럼 끈질기게 재판이 이어졌다. “여러번 포기하고 싶었다”고 박씨는 말했다. 지난 6월30일 대법원도 “박씨의 허리병을 산재로 인정하라”고 판결했다. 박씨의 승소가 확정된 것이다.
재판부는 “박씨가 19년 동안 식당에서 일하면서 장시간 서서 일해야 했고, 식자재와 식기 운반 등 10~50㎏의 무거운 물건을 들어 나르는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해 지속적으로 허리에 부담을 주는 등 여성으로서 감내하기 쉽지 않은 강도의 노동에 종사했다”며 “장기간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과도한 업무수행을 한 것이 허리병을 악화시켰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박씨와 함께 일한 식당조리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박씨처럼 허리·손목·다리 등의 이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밝혔다.
박씨처럼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은 식당마다 넘쳐난다. 최근 한국여성민우회가 식당노동자 29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식당일을 하면서 ‘허리·어깨·팔다리 등 관절통이나 근육통’이 새로 생겼거나 더 악화됐다고 응답한 이가 229명(77.1%)이나 됐다.
지난해 한림대학교 치료과학대학원이 식당 종사자 46명과 전업주부 40명을 비교·분석한 ‘중고령 종합병원 식당 종사자의 근골격계 부담 작업에 대한 위험성 평가’ 논문에서도 식당 종사자의 97.7%가 어깨·손목·허리 등의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 대상인 전업주부(70%)보다 높은 수치다. 하지만 근골격계 통증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식하고 산업재해 신청을 하는 식당노동자는 많지 않다. 여성민우회 설문 결과, 화상 등의 사고를 당했을 때 “산재 처리를 했다”고 답한 식당노동자는 응답자 232명 가운데 12명(5.2%)에 불과했다. 대부분(156명)은 자기 돈으로 병원에 갔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식당노동자의 허리병 등 근골격계 질환은 엄연한 업무상 질병”이라고 설명한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근골격계질환센터 소장(보건학 박사)은 “식당노동자의 일상적인 작업인 식자재 운반, 설거지, 배식 등은 모두 근골격계 질환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은 작업들”이라며 “1인 이상 사업장은 모두 산재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므로 작은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허리나 관절 등이 아프다면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은 근골격계 질환으로 요양승인을 신청한 9136건 중 5502건(승인율 60.2%)을 산재로 인정했다. 올해 1~6월엔 4051건 가운데 2483건을 산재로 판정해 승인율이 61.3%로 조금 상승했다. 여성민우회 나우 여성노동팀장은 “조만간 식당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식당노동자 권리 찾기 캠페인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산재에 대한 인식이 변화돼 중년 여성이 대부분인 식당노동자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평범한 행복 원했던 내가 목까지 매달고 있는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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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식당노동자의 허리병 등 근골격계 질환은 엄연한 업무상 질병”이라고 설명한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근골격계질환센터 소장(보건학 박사)은 “식당노동자의 일상적인 작업인 식자재 운반, 설거지, 배식 등은 모두 근골격계 질환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은 작업들”이라며 “1인 이상 사업장은 모두 산재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므로 작은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허리나 관절 등이 아프다면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은 근골격계 질환으로 요양승인을 신청한 9136건 중 5502건(승인율 60.2%)을 산재로 인정했다. 올해 1~6월엔 4051건 가운데 2483건을 산재로 판정해 승인율이 61.3%로 조금 상승했다. 여성민우회 나우 여성노동팀장은 “조만간 식당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식당노동자 권리 찾기 캠페인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산재에 대한 인식이 변화돼 중년 여성이 대부분인 식당노동자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평범한 행복 원했던 내가 목까지 매달고 있는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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