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마곡지구로 학교 이전이 추진되면서 사실상 폐교 위기에 몰린 ㄱ초등학교. 정문 앞 주차금지 쇠사슬이 학교의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듯 억세게 휘감겨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일반아파트 학부모들
“전학 허용” 교육청에 민원
하나둘 옮겨가 학생 급감
결국 폐교 위기까지 몰려
“전학 허용” 교육청에 민원
하나둘 옮겨가 학생 급감
결국 폐교 위기까지 몰려
“꺄~아악.” 26일 오후 영희(가명·9)가 학교 후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후문 앞 공원 나무들에서 투두둑 떨어지는 ‘송충이 비’를 피해서다. 나무를 올려다보며 영희는 머리를 감싸쥐었고, 땅을 살피며 폴짝폴짝 뛰었다. 텅 빈 운동장이 영희의 ‘까르륵’ 웃음소리를 삼켰다.
영희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서울 강서구의 ㄱ아파트 4단지에 산다. 영희가 다니는 ㄱ초등학교는 4단지에 바로 붙어 있다. 집을 나선 영희가 아파트 공원에서 몇 걸음 걸으면 금세 학교 앞이다. 4단지 옆 5단지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곳엔 ㅇ아파트가 있다. ㅇ아파트 아이들은 ㄱ초등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4·5단지를 통과하거나 우회해서 길 건너 ㅌ초등학교로 간다. 5단지 길 건너 맞은편의 ㄷ아파트와 ㄱ아파트 3단지 아이들도, ㄱ초등학교 맞은편 ㅎ아파트 아이들도 모두 ㅌ초등학교로 간다. ㄱ초등학교엔 4·5단지 아이들만 다닌다.
조만간 영희의 등굣길이 바뀔지도 모른다. ㄱ초등학교가 없어질 위기에 처한 까닭이다. 학교가 없어지면 영희는 ㅌ초등학교를 다녀야 한다. 영희는 ㅌ초등학교 학생이 되기 싫다. “공원에서 만난 ㅌ학교 애들이 ㄱ학교 다닌다니까 거지라고 놀렸어요. 같은 반 지혜(가명)한텐 원숭이라며 욕했어요. ㅌ학교 가면 훨씬 놀림을 많이 받을 거예요.”
이 동네 학교와 아파트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한다. ㄱ아파트 4·5단지는 장애인과 노인 같은 저소득층 수급 가정이 전체의 약 70%를 차지하는 영구임대아파트고, ㄱ아파트 3단지와 ㅇ·ㄷ·ㅎ아파트는 모두 일반 분양아파트다.
ㄱ초등학교는 1992년에 10개 학급 173명으로 개교했다. 93년엔 학급 수가 46개까지 늘었다. 학생 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건 94년 길 건너 ㅌ초등학교가 생기면서다. 영구임대 아파트인 4·5단지 아이들을 뺀 인근 아파트 아이들이 하나둘 ㅌ초등학교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특히 96년 ㅇ아파트 아이들이 ㄱ초등학교와 ㅌ초등학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 강서교육지원청의 ‘공동통학구역’ 지정 결정이 학생 감소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4단지 한 주민은 “당시 자기 자녀들이 ㅌ초등학교에 다니도록 해달라는 ㅇ아파트 주민들의 집단 민원을 교육청이 받아들이면서 아이들을 둘러싼 차별이 심화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가난한 우리 아이들과는 한 교실에서 공부시킬 수 없다는 얘기예요.” 홍희연(가명·47)씨는 “우리 애가 4단지 산다니까 ㄷ아파트 앞 ㅈ유치원에선 받아주지도 않았다”며 씁쓸해했다.
딸이 ㄱ초등학교 6학년인 장진애(가명·48)씨도 말했다. “5단지 담 너머에 있는 ㅇ아파트 아이들은 거리상 ㄱ학교를 가는 게 타당한데 공동통학구역 지정 후 길 건너 ㅌ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잘못된 교육행정 탓에 조손가정·결식·장애아동이 많은 ㄱ학교는 섬처럼 고립돼 거지집단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예요.” 현재(올 2월) ㄱ초등학교엔 12학급 218명만 다닌다.
지금 ㄱ초등학교는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서울시의 강서구 마곡지구 도시개발사업이 촉매제가 됐다. 교육당국은 마곡지구에 새로 발생할 학교 신설 수요를 ㄱ초등학교와 ㄱ중학교 이전을 통해 해결하려 하고 있다. ㄱ중학교는 ㄱ초등학교와 ㅌ초등학교 학생들이 졸업 뒤 진학하는 지역의 유일한 중학교다. 강서교육지원청은 마곡지구에 신설되는 초·중학교에 두 학교의 이름을 붙이되, 두 학교의 기존 학생들을 각각 ㅌ초등학교와 인근 5개 중학교로 분산 배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재 있는 두 학교는 매각 처분한다는 계획이다. ‘이전’이라곤 하나 사실상 ‘폐교’인 셈이다. 강서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현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은 학교를 새로 세우는 걸 가급적 억제하고 있다”며 “마곡지구 안에 학교를 신설해야 하는데 교과부에서 허가를 안 해주니 강서구에서 학생 감소 비율이 가장 높은 ㄱ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이전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강서교육지원청의 계획은 서울시교육청을 거쳐 지난해 7월5일 교과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의 결정까지 이끌어냈다. ㄱ초등학교와 중학교엔 지난해 8월 학교 이전 결정이 통보됐다. 사전에 학부모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은 전혀 없었다.
4·5단지 학부모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동통학구역의 차별적 적용으로 일반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빠져나가 학생 수가 급감한 ㄱ초등학교를 교육청이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타 지역 학교 설립의 희생양으로까지 삼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학교 정문 바로 맞은편에 건설중인 790여가구 규모의 아파트 자녀들을 교육청이 ㅌ초등학교에 배정하면서 ㄱ초등학교의 고립은 더욱 심해졌다. 강서교육지원청은 “ㄱ초등학교가 이전 예정이어서 ㅌ초등학교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댔다. “아파트를 짓고 있는 건설사가 지난해 12월 ㅌ초등학교 교실 증축에 13억원의 돈을 지원하는 협약을 학교 쪽과 맺었다”고 교육청 관계자는 말했다.
현재 ㄱ초·중학교 학교 처분과 마곡지구 새 학교 설립을 위해선 서울시의회의 승인(‘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 절차만 남아 있는 상태다. 서울시의회는 부정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이 9월 안에 교과부 재심을 요청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김상현 시의회 교육위원장(민주당)은 “서울시에서 가장 어려운 아이들이 다니는 초·중학교를 폐교하는 게 과연 올바른지 고려해봐야 한다”며 “만일 교과부가 재심에서도 원안을 고수한다면 상임위에서도 쉽게 처리해줄 순 없다”고 밝혔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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