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피해자 집단소송 추진
면책 조항·보수적 판례 ‘걸림돌’
면책 조항·보수적 판례 ‘걸림돌’
시민단체가 느닷없는 단전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을 모아 단체 소송을 내기로 했다. 전력공급 계약서의 ‘면책조항’을 이유로 법원 등이 한국전력의 배상책임 인정에 매우 소극적이지만, 시민단체는 정부가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만큼 다퉈볼 만하다는 입장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6일 “이번 사태는 인재임이 드러났다”며 “피해구제에 관심이 없는 정부와 한전 등을 상대로 공익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피해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4시에 시작된 접수에는 2시간여 만에 200여명이 참여했다. 마침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도 이날 국회에 출석해 “매뉴얼대로 조치했다고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손해 배상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전이 그동안 보여온 태도나 법원의 판례 등을 놓고 보면, 보상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전은 전기공급 계약 체결 때 제시한 ‘전기공급 규정’의 ‘면책조항’을 근거로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법원은 대부분 이를 수용해 왔다. 전기공급 규정은 “부득이 전기공급을 중지하거나 그 사용을 제한할 때 수용자가 받는 손해에 대해 한전은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정해 놓았다.
전기 소비자에게 이 면책조항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약관설명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16년 전인 1995년 “계약 당시 면책규정을 들었다 하더라도 전기공급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거라는 근거가 없다”며 “따라서 이는 설명의무가 있는 중요한 약관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로텍의 이헌욱 변호사는 “소비자가 면책조항을 설명 듣고도 계약을 체결하는 건, 중요한 약관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한전이 (전력의) 독점 공급자이기 때문”이라며 “한전과 같은 독점 공급자의 경우에는 약관 설명의무를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2년에는 한전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전신주의 자동개폐차단기 고장으로 인한 정전 때문에 냉해를 입은 농민 523명이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한전 쪽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그 비율은 40%에 그쳤다.
경실련은 관련 법률과 판례 등을 따져볼 때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윤철환 국장은 “면책조항은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1차 피해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그로 인한 재산 피해 등 2차 피해까지 해당되는 건 아니다”라며 “(한전이나 법원이) 면책조항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다면, 헌법소원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