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는 법무부에 ‘통신제한조치 허가 신청서’의 개정을 요청하면서 감청 대상을 뭉뚱그려 적어내던 기존의 ‘통신제한조치 종류 및 방법’ 난(위)에 전화감청, 패킷감청 등 7가지 방법을 열거하고 이를 특정하도록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수사기관 감청영장 항목 세분화로 사생활 침해 막아야”
범죄 수사를 위해 수사기관이 법원에 이메일 등의 감청을 허가해 달라고 신청하는 ‘통신제한조치(감청)’ 청구서와 관련해,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우려한 법원행정처가 ‘감청 대상’을 특정해 달라고 법무부에 요청했으나 법무부가 1년이 넘도록 답신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10월 ‘통신제한조치 허가 청구서 양식 개선에 대한 협조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법무부 검찰국에 보냈다. 공문의 내용은, 검찰이 통상 통신제한조치를 청구할 때 전화 감청·이메일 감청 등 다양한 대상을 한꺼번에 뭉뚱그려 청구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니 대상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수사기관이 범죄 수사에 쓸 목적으로 특정인의 전화나 이메일 등을 감청할 때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통신제한조치 청구서 양식에는 ‘종류 및 방법’ 칸에 감청 대상을 풀어쓰도록 돼 있다. 법원행정처가 당시 제안한 새 양식은 이를 개선한 것으로, 해당 칸에 △우편물 검열 △전화 감청 △이메일 감청 △패킷 감청 △비공개커뮤니티 감청 △대화 녹음·청취 △기타로 세분화해 수사기관이 감청 대상과 방식을 ‘선택’해 표시하도록 돼 있다. 기존의 ‘주관식’ 항목을 ‘객관식’으로 바꾸자는 취지다. 법원행정처의 한 관계자는 “개인의 사생활과 직결된 부분인 만큼 수사기관의 감청 항목을 명확히 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통신제한조치 청구서에 감청 방법을 포괄적으로 적어 내다 보니 사실상 제한이 없는 ‘백지 감청’이 이뤄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전교조 소속 김형근(51) 전 교사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패킷 감청’ 청구서를 보면 이런 부작용이 잘 드러나 있다. 국정원과 검찰은 지난해 12월27일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한 통신제한조치 청구서에서 통신제한 범위를 광범위하게 적어 냈으나, 법원은 범죄의 소명이 있는 일부에 대해서만 통신제한조치를 허가했다. 법원이 기각한 내용을 보면, 김씨의 네이버·다음·네이트 전자우편 수·발신 및 접속 기록, 김씨 사무실의 우편물 등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당시 신광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통신제한조치 허가서에서 “대상자가 (구글의) 지메일과 부모 명의로 중요 사항에 대한 메일을 사용하고 있는 점, 사무실은 다수가 함께 이용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기각한 대상은) 그 필요성이나 비례상의 원칙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정필 노현웅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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