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답습 ‘출산 억제책’ 시행
“신체자유·인간기본권 침해”
일, 1인당 800만원 지급 전례
“신체자유·인간기본권 침해”
일, 1인당 800만원 지급 전례
유전병 아닌줄 알면서… 갓난아기 빼앗고 약먹여 유산시키고
박아무개(66)씨는 12살 어린 나이에 한센병에 걸렸다. ‘문둥병’ 환자로 불리며 주변의 멸시를 받던 박씨는 이웃의 괴롭힘에 쫓기듯 한센인 정착마을인 울산 ‘성혜마을’로 들어갔다. 박씨는 그곳에서 조아무개(72)씨를 만나 2년 뒤 아이를 가졌다. 박씨의 나이 18살이던 1963년의 일이다.
임신 사실이 알려지자 두 사람은 국립나병원인 부산의 용호병원으로 옮겨졌다.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다시 경북 안동의 한센인 보호시설인 ‘성좌원’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원장은 “성좌원에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아이를 고아원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두 사람도 쫓겨날 판이었다. “그때만 해도 쫓겨나면 죽는 줄 알았어요.” 두 사람은 결국 첫아이를 고아원으로 보냈다.
남녀 숙소에서 각자 생활을 이어갔지만, 이내 박씨는 둘째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또다시 빼앗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박씨는 천으로 배를 동여 싸 임신 사실을 숨겼지만,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배를 가릴 수는 없었다. “까마귀가 알을 낳으면 까마귀가 태어나지 까치는 안 태어난다”며 원장은 8개월 된 아이를 지우라고 했다. 박씨는 수소문 끝에 울산의 무허가 산파를 찾아갔다.
산파가 준 약을 먹자 다음날 아이가 몸 밖으로 나왔다. 딸이었다. “아이가 죽지 않고 꾸물꾸물대는데… 산파가 그러데요. ‘약 먹고 유산하면 아이가 살아서 나온다’고….” 산파는 붉은 바구니에 아이를 담아주며 박씨에게 직접 버리라고 했다. 박씨는 ‘방어진 갈대숲’에 아이를 버렸다. 그러고는 혼자서 기차를 타고 안동으로 돌아갔다.
같은 시각, 남편은 성좌원에서 강제로 정관시술을 받았다. ‘생식기능’을 차단해 임신을 막고, 병의 전염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이른바 ‘단종’ 수술이었다.
박씨와 같은 한센병 회복자들이 과거 한센인 정착촌에서 행해진 ‘강제 낙태’와 ‘단종’ 행위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처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한센인권변호인단(단장 박영립 변호사)은 17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50년대 초 이미 한센병이 유전으로 감염되지 않으며, 완치가 가능한 병임을 국가가 알았음에도 국가는 일제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해 한센인들에게 낙태와 단종을 강요했다”며 “이는 국가가 한센인들의 평등권과 신체의 자유, 인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어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소송에는 강제낙태 피해자 17명과 단종 피해자 190명 등 모두 207명이 참여했다.
박영립 변호사는 “2008년 10월 ‘한센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3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한센병 회복자들의 피해를 금액으로 산정할 수는 없겠지만, 우선 단종 피해자에겐 3000만원, 낙태 피해자에겐 5000만원씩의 배상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앞서 2006~2008년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단종·낙태수술을 당한 국내 한센병 회복자 526명에게 1인당 800만엔(1억원)씩의 보상금을 지급한 바 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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