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유영 판사 항소심
“민족에 대한 탄압행위 해당”
작년 ‘김세완 친일’ 선고 이어
‘반민족 판사 기준’ 정리된 셈
“민족에 대한 탄압행위 해당”
작년 ‘김세완 친일’ 선고 이어
‘반민족 판사 기준’ 정리된 셈
일제 강점기에 판사가 독립운동가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행위도 친일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애초 ‘친일이 아니다’라고 했던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당시 실정법을 따랐다 하더라도 반대의견 등을 내지 않았다면 적극적인 친일 행위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일제 강점기 판사의 재판이 친일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하급심에서 엇갈렸던 법원 판결이 상급심에서 ‘친일’로 정리된 셈이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곽종훈)는 10일 일제 강점기인 1920년부터 판사로 재직하면서 독립운동가 수십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행위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유영(1950년 사망·당시 68)의 손자가 이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에 시행된 법령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독립운동가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은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에 대한 탄압 행위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유 판사는 독립운동가 54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는데, 이는 일제 시대 판검사로 재직한 이들(208명)의 독립운동 사건 처리 건수에서 상위 10%에 해당하고, 유 판사가 실형을 선고한 독립운동가들이 복역중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며 “이는 일제 수사기관의 악랄한 고문과 그로 인한 자백의 불법성을 애써 외면한 판결로 친일 행위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훈4등 서보장’ 등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이 친일의 증거는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선 “직접적인 대가는 아니라 하더라도 25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며 조선총독부의 재판소 운영 정책에 적극 호응하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친일인명사전> 등을 보면, 유 판사는 일제 강점 중반기의 대표적 무장 독립투쟁 단체인 의열단 사건 관련자 이수택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등 독립운동가 60여명에게 유죄 판결을 했다. 이수택의 독립운동에 대해 유 판사는 당시 “다수가 공동으로 안녕·질서를 방해한 행위”라며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이수택은 복역중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유 판사가 법원에 넘어온 사건을 단순 판결한 것이어서 친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김종필)는 “판사는 검사가 기소한 적용 법령과 공소 사실을 기초로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는 역할만을 한다”며 “판사가 항일운동 관련 사안을 재판했다는 것만으로는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을 탄압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한편 지난해 12월 같은 법원의 행정1부(재판장 오석준)는 일제 강점기에 12년간 판사로 재직하며 독립운동가 관련 재판 7건에서 14명에게 실형을 선고한 김세완(1973년 사망·당시 79살)의 재판 행위에 대해 “친일이 맞다”고 판결한 바 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당시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김종필)는 “판사는 검사가 기소한 적용 법령과 공소 사실을 기초로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는 역할만을 한다”며 “판사가 항일운동 관련 사안을 재판했다는 것만으로는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을 탄압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한편 지난해 12월 같은 법원의 행정1부(재판장 오석준)는 일제 강점기에 12년간 판사로 재직하며 독립운동가 관련 재판 7건에서 14명에게 실형을 선고한 김세완(1973년 사망·당시 79살)의 재판 행위에 대해 “친일이 맞다”고 판결한 바 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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