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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관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중립 조항 충돌

등록 2011-11-27 21:03수정 2011-11-27 22:06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첫 주말인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과 야당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 네거리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첫 주말인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과 야당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 네거리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 판사의 ‘FTA 반대’ 소신발언 둘러싼 논쟁
닥치고 판결? “중립의무 직무수행 한정 필요”
‘SNS서 의견표현’ 공적-사적 영역 규정 논란
보수신문 낙인찍기식 사상검증 보도도 문제
인천지방법원 최은배(45·사법연수원 22기) 부장판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와 관련해 비판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법관의 정치적 의견 표명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이 사안을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법관의 의견 표명은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개인의 기본권 문제이기도 한 만큼 더 넓은 범위에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정치적 중립 의무’의 위반인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법관윤리강령은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 부장판사의 글을 문제 삼는 쪽은 “법관이 정치적 성향이 강한 글을 올림으로써 편견이나 선입관을 갖고 있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재판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 부장판사는 중립의무가 직무에 한정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최 부장판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공무원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이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법관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이 특정한 정치 편향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고 밝혔다.

법관에게 지나친 중립 의무를 지우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정연순 사무총장은 “‘정치적 중립’은 외부의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한 것일 뿐, 시민의 한 사람인 법관이 직무와 관련 없는 사안에 의사 표현을 하는 것까지 막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며 “지금의 논란은 판사에게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법관들을 위축시켜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소통을 두려워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법관들은 징계 등 제재를 통해 법관의 의견 표명을 막을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제도를 활용해 문제점을 보완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법관윤리강령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법관들의 사회활동이 위축되는 게 사실”이라며 “직무 관련성이 없는 한도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주되, 향후 직무와 연관이 될 경우 법관 스스로가 해당 재판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의 또다른 판사는 “법관도 자신의 신념이 있겠지만, 헌법과 법률, 양심, 증거에 따라 판단한다”며 “법관이 직무상 위법 행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성향이 외부에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 SNS는 공적 영역인가 사적 영역인가 법관윤리강령은 정치적 중립에 대해 ‘이 규정은 법관이 사사로이 정치적 견해를 가지거나 친지들과 정치적 토의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즉 사적 영역에서까지 정치적 견해를 숨길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에스엔에스에 글을 올려, 결국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공적 영역’에 노출된 것과 관련해 최 부장판사는 “에스엔에스가 일부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며 “다만 지름 10㎝ 정도 퍼져나갈 소문이 특정 언론의 보도로 1m 이상 퍼져나간 양상으로, 이런 보도 행태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사회 전반에서 에스엔에스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음에도 법관이라는 이유로 통제하려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는 “기존 미디어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뉴스가치를 에스엔에스에서 선별해 의제화하고 있다”며 “친구에게 일대일 문자를 보내거나 통화하듯 페이스북에서 표명한 견해를 놓고 사상검증하듯 다루고,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며 획일적으로 규제하려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 보수신문의 사상 검증이 문제 <조선일보> 등 보수신문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판결이 나올 때마다 ‘이념적 딱지’를 붙이며 사상검증을 시도해왔다. 이번에도 최 부장판사가 법원내 진보적 법관 모임인 ‘우리법 연구회’ 소속임을 강조하며 낙인찍기를 시작했다. 다수의 언론학자들은 이처럼 자신들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곧장 사상검증을 하듯 몰아가는 것은 언론 본연의 비판적 역할을 넘어선 것이라고 짚었다.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토론회 등에서 나온 공적 발언이 아니라 사적 발언인데도 단지 자신들과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파적 관점에서 사상검증을 하려 드는 것은 마녀사냥식 보도”라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문현숙 선임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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