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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싱크탱크 광장]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도 아우르는 복지동맹을”

등록 2011-12-13 19:27

‘복지국가 건설의 정치경제학’을 주제로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제4회 대안담론포럼이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신광영 중앙대 교수, 신동면 경희대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고세훈 고려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복지국가 건설의 정치경제학’을 주제로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제4회 대안담론포럼이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신광영 중앙대 교수, 신동면 경희대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고세훈 고려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대기업 중심 기업별 노동운동탓
복지국가 운동서 노동문제 빠져

노동유연화 불가피론 내세우며
복지로 보완하려는 태도는 안돼

왜곡된 고용이 10·26선거때
‘2040연대’ 탄생시킨 주요배경

차별적 이중 노동시장 구조 깨고
노동-시민 넘어선 ‘무한 연대’를

복지국가와 노동시장-<상> 한겨레사회정책연·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 주최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사단법인)한겨레일과사람연구소는 노동시장과 복지의 관계 및 상호 역동성을 점검하는 ‘복지국가와 노동시장’ 기획을 공동으로 마련해 두차례에 걸쳐 본 지면에 게재한다. 그 첫째로 지난 8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제4회 대안담론포럼(복지국가 건설의 정치경제학)에서 제기된 ‘복지와 노동’ 논쟁을 싣는다. (사)한겨레일과사람연구소가 기획한 ‘복지국가와 노동시장(하)’ 편은 21일치 본 지면에 게재될 예정이다.

조계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노동 없는 복지’인가, ‘노동 있는 복지’인가?

복지와 노동시장의 상호 연계성은 그동안 복지논쟁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돼 왔다. 이번 포럼은 복지국가와 노동시장의 상호 관계와 역동성을 집중 조명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끌었다. 은수미(사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복지세력의 형성: 시민연대냐 노동연대냐를 넘어’라는 주제발표에서 “복지국가 운동의 주요 이슈에 노동문제가 빠져 있다”며 “복지국가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킨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요구는 외양상 노동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에서 상당수의 복지 이슈가 사실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저임금노동자로 분단돼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깊이 연관돼 있음에도 ‘노동 없는 복지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복지논쟁에 노동의 목소리가 실종돼 있는 이유는 뭘까? 우선, 한국의 노동조합이 복지국가 논의에 별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 흔히 제기된다. 대기업 노조가 이끄는 기업별 노동운동은 해당 사업장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에만 관심을 집중할 뿐 자기 조합원이 아닌 실업자나 비정규직 문제 등 전사회적 복지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동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은 연구위원은 “복지국가 의제가 사회보장에만 과다한 초점을 맞추고 있고, 1차 복지인 공정노동 혹은 괜찮은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낮은데다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에 대한 대책은 복지와 다른 것처럼 종종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의 요구가 실종된 복지체제는 노동자 정당의 취약성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선 신동면 교수(경희대)는 “노동의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노동자 정당이 한국에서 활성화되지 못한 것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신분적 차별 및 노동시장의 1차적 분배구조의 개선을 이뤄내지 못한 요인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지에 대한 광범위한 수요는 고삐 풀린 노동시장에서 비롯된다. 경제적 측면에서 복지 수요의 확산은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가 갖는 노동3권의 훼손을 배경으로 한다. 즉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동시적 활용’이라는 한국형 왜곡된 고용전략이 횡행하고 있고, 저임금·비정규 일자리에 취업한 노동자들은 노동생애 전반에 걸쳐 비정규-실직-근로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크다. 은 연구위원은 “주변부 노동시장의 확대, 저임금·비정규 노동의 확대, 근로빈곤 위험 등이 복지 요구를 키우고 있다”며 “이러한 복지 수요의 확산이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40(20~40대 젊은층) 연대를 낳은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복지와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해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병천 교수(강원대)는 “우선 ‘삼성동물원’의 생태계에 갇혀 있는 재벌독점체제부터 혁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는 경제구조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다단계로 하청이 내려가면서 위험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 재벌독식의 기업생태계를 고치고, 기업과 노동자가 고숙련의 ‘높은 균형’으로 경제적 타협을 하는 ‘높은 길’(high road)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복지국가와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맡은 유종일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도 재벌이 독식하는 경제체제를 수선하지 않은 채 복지를 하게 되면 돈도 많이 들고 별로 소용없는 복지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복지국가 논쟁은 ‘복지’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강했고, 노동과 복지를 서로 구분하거나 하나를 다른 하나의 잔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도 있어왔다. 이런 시각은 “노동유연화나 노동시장 불평등은 불가피하며, 단지 그에 따른 위험을 복지, 즉 사회안전망을 통해 보충해야 한다”는 접근을 취한다. 여기서 노동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복지 수급권도 없어진다. 노동과 복지를 구분하는 시각은 △중심부-주변부의 노동시장 분절 문제를 회피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노동시장 구조나 노동권의 사각지대를 수술대에 올리기보다는 복지라는 영양제를 놓아 고통을 완화시키려 한다.

노동과 복지의 상호관계에 대한 은 연구위원의 대답은 간명하다. “노동이 곧 복지”이며, 노동과 복지는 사회적 권리를 매개로 한 복합체다. 즉 노동권이 보장된 노동 혹은 공정한 일자리 역시 ‘복지’다. 은 연구위원은 “상품이 아닌 노동, 공정한 노동을 보장하는 1차 노동시장 분배가 복지국가의 기본 전제이다. ‘두 개의 노동시장, 두 개의 노동, 두 종류의 시민’이 존재하는 곳에서 복지국가는 없다”며 복지국가를 지향할 때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이중 노동시장 구조를 먼저 혁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에서의 공정한 1차 분배와 2차 복지(사회보장을 통한 재분배)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복지국가는 공정한 노동 및 사회적 재분배 실현을 위해 시장의 힘을 규제하고 수정하고 제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폭주하는 시장이 초래한 광범위한 복지 수요가 곧바로 복지동맹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복지국가에 대한 강력한 지지로 나타날 것인가? 은 연구위원은 “노동조합이 복지국가에 관심이 없다면 과연 누가 복지국가를 만들어갈 것인가”라고 물은 뒤 노동운동이나 노동문제가 복지국가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복지국가의 실현이나 복지동맹 형성이 어렵다고 말했다. “저임금 비정규직 등의 광범위한 복지수요를 복지동맹으로 바꾸어낼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들 사이에 복지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노동복지 경험재’를 만들어낸다면 복지 수요의 확대를 복지동맹 형성으로 바꾸어낼 수 있다.” 은 연구위원은 이를 “노동연대냐 시민연대냐”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무한연대’라고 이름붙였다.

하지만 ‘노동’이 복지국가의 주체로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유종일 교수는 “한국은 노동조합이 대기업 중심이고 조직률도 낮다. 대기업 정규직은 기업복지의 혜택을 받고 있어서 사회적 보편복지에 큰 관심이 없다”며 “오히려 중소 영세자영업자들이 복지국가를 더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고원 교수(서울과학기술대)도 이날 주제발표에서 서구의 전통적 복지동맹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노동조합과 좌파 복지정당 간에 갈등과 협력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를 둘러싼 노동-자본-국가 사이의 타협체제(코퍼러티즘)가 약화되고 대신 의회와 정당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에 따라 고 교수는 “한국에서도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보다는 정당 중심으로 복지국가 논의가 전개되고 있으며, 복지친화적인 정당들 간의 역동적인 연합정치체제를 구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노동은 자신을 지키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힘이 취약하기 때문에 중산층을 복지동맹세력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제출됐다. 토론자로 나선 김영순 교수(서울과학기술대)는 “노동자와 중간층을 포괄하는 ‘시민’에 기반해 힘을 결집하는 우회로를 택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복지국가는 부자와 빈자의 격차를 줄이는 로빈 후드적인 기능도 있고, 어떤 생애주기에서 돈이 필요할 때 돼지저금통 기능을 하는 측면도 있다. 노동계급보다 중산계층이 교육, 건강 등에서 더 많은 복지국가 혜택을 볼 수도 있는데 이들을 복지동맹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이날 포럼의 결론은 이른바 ‘노동 있는 민주주의’로 모였다. 토론자로 참여한 고세훈 교수(고려대)는 “요즘 융성하는 복지담론을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들로만 치장돼 있다. 그러나 원래부터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싸워서 얻는 것이고, 쟁취를 위한 주체의 문제”라며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통해 노동자들이 국가와 시장의 반복지를 복지로 바꿔나가는 대항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kyewan@hani.co.kr

“북유럽 소비세 비중 높아” “부자증세·법인세 올려야”

소비세 증세 통한 복지 강화 논쟁

이날 포럼에서는 복지국가 건설과 유지에 필요한 재정조달과 관련해 소비세 증세 방안을 둘러싸고 열띤 논란이 벌어졌다. 논란에 불을 붙인 이는 윤홍식 교수(인하대)다.

윤 교수는 ‘복지국가 조세체제의 변화와 쟁점’ 주제발표에서 “소비세는 복지국가 건설과 관련해 한국 좌파진보 진영에서 금단의 언어로 치부되고 있다”며 “그러나 소비세를 통한 복지재정 증세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높은 소비세 비중을 제시하며 “복지국가들은 1980년대 이후 법인세와 개인소득세에 대한 감세정책으로 새로운 세원을 찾아야 했는데 이때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새로운 세원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좌파가 불평등 확대를 이유로 반대했던 소비세였다”고 말했다. ‘대규모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소비세의 빠른 도입이 노르딕 복지국가를 가능케 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는 얘기다.

윤 교수의 소비세 증세 방안에 대한 비판은 당장 터져나왔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선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소비세는 시장에서 거둬들일 수 있지만 직접세는 제도와 정치의 문제”라며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추동하는 대중적 복지주체를 형성해야 하는 문제가 급박한데 이를 위해서는 직접세 방식으로 복지재정에 참여하는 재정주권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오 실장은 근래에 세금을 더 내더라도 복지수준을 더 높이자는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도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성향이 극히 낮아졌다. 이제는 설비투자보다는 소비를 늘려야 경제도 성장한다”며, 따라서 소비에 대한 세금을 늘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신 홍 연구위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매우 낮은 우리나라 기업의 법인세를 대폭 올리고 한국판 버핏세를 거두면 복지재정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세은 교수(충남대)는 “어떤 세금이 복지국가 건설과 유지 그리고 경제에 효율적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겠으나, 문제는 선택인데 전략적으로는 부자증세가 맞고 현실적으로는 보편증세로 가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토론이 끝날 무렵 윤 교수는 “소비세 증세는 중장기적 방안”이라고 단서를 붙였다.

조계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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